작품기고, SPACE No.563, 2014.10
An Article, Magazine SPACE No.563, Oct. 2014
지역성의 파탄자
이 말은 내가 1998년도 제주도에 설계했던 민박집을 제주도의 한 교수가 비평한 글의 제목이다. 비극적이게도 파탄자로 지목된 사람은 나였고 파탄의 주범으로 지적된 부분은 지붕의 모양새였다고 한다. 그 당시 제주에서는 초가의 형태를 닮은 둥근 지붕이나 경사지붕위에 송이를 얹는 등의 방식들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지역성’을 반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파탄의 의도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저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편정도로 설계된 평슬라브 지붕이 그 교수가 중히 여겨 마지않는 ‘지역성’을 단한 번의 셧으로 절명시켰다고 하니 얼마나 면구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이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의 제주도는 그야말로 파탄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이제 평슬라브 정도는 죄로 취급되지도 않을 만큼의 흉악범과 도굴범이 창궐하고 아키데일리등 해외 웹진에 등장된 건물들이 밀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지금의 제주도 상황을 중국의 문화혁명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파탄의 시대에 다시 ‘지역성’을 언급하는 건축가를 만났다.
“나에게 지역성이라는 것은 머 거창한 것이 아니라 동네입니다 동네. 멀리 볼 것도 없이 그냥 이 동네와 이 집의 관계요. 이 집과 주변 말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맛나게 쓰는 이 건축가는 ‘지역성’이란 무직한 바위를 마치 공깃돌처럼 여기는 듯 했다. 심지어 왜 그런 시시한 질문을 하냐는 듯 심드렁했고, 그 물건이 한 근에 얼마짜리냐 식의 냉소와 뷔페를 차려놓았더니 하필 간도 안 벤 김치 하나만을 두고 타박하냐는 배짱도 가지고 있었다. 부러운 일 아닌가. 그런 그가 자신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선택한 도구는 다름 아닌 그리드라는 휴대용 투망이었다.
過 지나친 것
내가 그의 그리드를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학생들 작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도식으로부터 직감되는 아마추어적 수준을 예단해서거나 ‘그리드 속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좋다. 비쥬얼과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이슈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라는 피어 리뷰어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그런 찬사를 받고 있는 그리드를 이 집의 땅위에 해당시킨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물론 ’별처럼 생긴 대지모양이어서‘ 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양이 별이 아니라 아메바나 고구마처럼 생긴 부지라면 그땐 어쩌겠는가?
失놓친 것
그가 던진 투망의 결에선 이런저런 것들이 서식하고 있다. 제주의 옛집의 무엇을 느낄만한 헛간도 있고 거실과 부엌 등으로 이루어진 집도 한 채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툇마루와 정원과 옛집에서 출토된 주춧돌을 박물시킨 장소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별이라고 부르는 부정형의 부지와 그리드가 만나는 곳에서다. 그리드의 속성상 픽셀의 진화는 외곽에 당도했을 때 멈추게 되는데 이때 직과 곡이 만나면서 격자틀이 와해되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서도 중단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미숙을 넘어 방임이거나 미필적 고의가 되는데 그는 이 결과를 알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건 큰 失실이다.
得얻은 것
이집은 그가 맡기 전 이미 여러 건축가들에게 의뢰되었고 또한 기피되었다고 한다. 짐작컨대 이 집을 별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축주의 옵션이 탐탁하기 않았거나, 작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설계비가 뻔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5000만원이라는 저예산에서 요구된 다양한 설계조건을 해결한 만한 묘책이 없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건축가 맘대로 해도 좋다’라는 매력적인 조건이 이런 경우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신뢰나 재량의 의미가 아님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덥석 이일을 맡은 것은 이제 막 시작한 건축가의 불안도 있겠지만 그리드라는 추상적 개념을 실제로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거나 여러 건축가들이 기피한 땅을 가지고 있는 건축주의 다급함은 오히려 그의 제안이 수용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가 던진 투망은 이 집을 조밀하게 포획하고 있다. 예측대로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도를 통해 그가 얻은 무엇일까? 그것의 첫째는 추상적 그리드의 현현을 확인한 것이다(어쩌면 다시는 그리드를 사용하지 않거나 버릴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하나는 실천을 통해 체험하기 않고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과 조우가 아닐까. ‘過 지나친 것‘ ’失놓친 것‘에 해당하는 것의 실재를 그 집을 통해 목격한 것 말이다. 경험하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