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선생께서 수리하는 집은 이 동네에서도 유독 낡은 집입니다. 어찌 그런 집을 수리하게 되셨는지요?”
“한 8,9년 집을 수리하다보니 이제 어느집이든 수리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물을 보면 그 속이 보이거든요. 뼈도보이고 핏줄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좀 지루해졌어요. 그러던 중 어떤이가 매물로 나온지 오래되었는데도 아무도 사지 않는 집이 있다고 하더군요. 집장사들도 고개를 젖는다는. 저는 그 말이 확 땡기더군요. 모두가 포기한 환자를 만난 의사같은. 당장 보러왔죠. 역시 사람들이 그 집을 사지 않는 이유들로 가득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집…. 길에서 그 집 지붕도 내려다 보이고 그 집 마당도 내려다 보여서 동네사람들이 업신여기는 그런 집이었는데 그 집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 집이 아니라 그 집에서 업신여김을 받으며 사는 삶을 수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걸 원치않았어요. 오히려 그 집을 떠나고 싶어했어요. 사람 뿐 아니라 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처럼 자신을 그대로 죽게 놔두라는거예요. 아니다. 그러지말라고. 살 수 있다고… 암만 그래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심지어 귀찮게 굴지 말라는겁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를 영화화한건데 안데스산맥에서 추락한 사람들이 얼어죽어가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 들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흔들어도 정작 당사자들은 귀찮아해요. 살아나봤자 기다리는 것은 굶주림과 추위 밖에 없으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하려는데 그것을 훼방하는 사람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그럼 그 집을 샀습니까?”
“산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산거면 산거지 마찬가지는 또 멉니까?”
“그기… 전 돈이 없어요. 가진건 볼 줄 아는 눈과 만들어 낼 수 있는 생각뿐이거든요. 헌데 돈은 있고, 볼 줄은 모르지만 내가 수리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몇 있어요. 그들을 만나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달라고 했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하며.
“히브리서 11장1절 말씀.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히브리어로는…”
“신.…신….신부님이세요? ”
“신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면 신부고 아니면 아니지 마찬가지는 또 머예요?”
“아까 이야기를 계속하죠. ‘인간의 대지’ 그 부분부터…”
“처음 저 집을 방문한 날 할머니가 나오시더라고요. 몇 년 동안 햇볕을 못보신 분처럼 눈을 부셔하면서 방 안에서 나오셨어요. 문틈 사이로 사기로 만든 요강이 보이고, 할아버지 영정사진, “안되면 되게하라”라는 뱃지, 가족사진들…. 그분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할머니는 “아가아가” 이렇게 불렀어요. 잔금을 치루는 날 부동산까지 할머니가 나오셨어요. 아들이 엄마 손을 집어다 인주를 찍은 후 계약서에 꾹 누르더라고요. 할머니는 아들이 손을 잡으니 영문도 모른체 좋아하시다가 “이제 집에가자 아가야.” “엄마 인제 거기 우리집 아냐. 인제 나랑 같이 살아야해. 미아리서.” “아니 얘야 그게 무슨말이니. 그럼 저 흰머리가 우리집을 산거냐? 그럼 느아부지 사진은 어쩌고, 요강은?”
“그걸로 끝이었어요. 집에 가보니 할머니 살림살이, 덮었던 이불, 북어대가리 매달린거, 아들 도시락 싸줬던 찬합… 다 그대로고요.”
“그 집 지붕만 맨날 봤지만 어떤 사람이 사는지는 몰랐어요. 근데 어떻케 고칠라고 합니까? 살기 싫어하는 노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