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입문修理入門
“오랜만입니다.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요?”
“집수리를 합니다.”
“집수리?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건축 평론가는 내가 집수리업자로 전향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긴 그를 처음 만난 것도 내가 설계한 건물이 잡지에 발표되었을 무렵이고 이후의 만남도 건축가들의 모임에서였으니 집수리를 하며 산다는 소식은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난 첫 번째 일감이었던 ‘율리아네 집수리’를 비롯한 몇 개의 작업을 발표했다.

나는 목수다.
  나는 요즘 집수리에 재미를 붙였다. 이 말에서 무언가 촌스러움을 느끼거나 동네에서 흔히 보던 ’집수리’ 간판을 떠올린다면 내가 말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여느 집수리장이처럼 인부들의 숫자를 헤아   려 점심밥을 시키고, 삼립빵과 컵라면의 가격 차이를 따져 새참을 준비하고, 내일 사용할 벽돌을 미리 주문하고, 새벽 인력시장에 기별해 젊은 사람이 아니면 되돌려보내겠다며 눈을 부라리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 나의 생업은 집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개신교 예배당을 많이 설계했다. 처음 맡은 일은 제주도의 강정교회였는데 그때 내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재주가 괜찮았는지 옆 동네와 서울에서도 일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설계한 것이 마흔 여덟이니 십여 년간을 교회 건축가란 타이틀로 살아 온 것이다. 요즈음 내 명함에는 건축가 대신 목수라는 직함이 찍혀 있다. 이는 그 동안 지향했던 건축가적 삶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내 삶의 경로를 수정한 것이다. 내가 소유한 재능 혹은 자질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언어를 뼈아프게 수긍할 수밖에 없던 경험과 ‘내 생각’이라고 부르던 건축에 대한 개념조차 내 몸에서 자란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내린 결정이다. 그런 각성과 더불어 오랫동안 집중했던 교회 건축에서 더 이상 진보적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도 이와 관계 있다. 대개 그렇지만 이념적 동반 없이는 지속이란 낱말을 정직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교회 건축을 통해 성취하려던 시도가 실패한 중요한 이유는 나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어떤 사주쟁이의 말마따나 도덕적 관념이 부재한 인간이 종교 건축에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두 가지 결과를 얻었다. 하나는 자신의 영토라고 믿던 곳에서 소출을 얻지 못한 자의 쓰디쓴 절망이며 또 하나는 그것에 상응하는 자유다. 전자는 선택이라면 후자는 보너스였다. 공들인 경작지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런 상실에서 얻은 자각은 그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행복을 선사했던 것이다. 홀가분했고 더러는 섭섭했다. 이런 결정이 스스로의 성찰로 얻은 것이 아니라 수정을 초래한 대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다. 그렇지만 동상처럼 자리했던 건축가적 욕망과 숙주처럼 엉겨 있던 열등감도 함께 사라졌다. 이젠 나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건축가를 만나도 더 이상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목수이기 때문이다. -스페이스201108호에 개제-

수리지명修理之名  만약 그날 만난 평론가에게 내가 하는 일을 집수리가 아니라 리모델링이나 레노베이션이라고 말했다면 그때도 ‘어쩌다’라는 딱한 표정을 지었을까? 집수리는 오래전부터 흔히 사용했던 말이긴 하지만 건축가들의 직능이라기 보다는 집에 생기는 사소한 문제를 고치는 정도로 인식해왔고 그나마도 지금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수리대신 리모델링 같은 외래어를 사용했다면 다른 이미지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어느 대학교 건축과에서 집수리를 주제로 특강을 했는데 그때 나와 동행한 그 학교 출신의 직원과 스승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네 요즘 무얼하고 지내나?”
“네, 집수리를 합니다.”
“집수리?………..자네는 좀더 번듯한 직장을 갔어야 했는데….“
나름으로 아꼈던 제자가 누구나 알만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집수리를 한다니 스승의 마음이 마뜩치 않았던 것인데 그것은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소장님. 집수리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쓰면 안될까요? 명절 때 집엘 가면 주변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떤 직장에 다니냐고요. ‘집수리를 합니다’ 하면 대부분은 또 묻습니다. ‘집수리라고?’ 하면서요. 우리가 하는 집수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과 다르다고 말해도 잘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리모델링하는 회사입니다’ 하면 더는 안 묻습니다.”
‘집수리’라는 말에 대한 서로의 정서와 해석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修理수리’가 지닌 한자적 의미를 더듬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망가진 하수도나 정화조, 녹쓴 처마, 문설주에 벗겨진 페인트 등을 연상하는 듯 하다. 나는 물론 둘간의 차이점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정화조나 하수도 또한 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수리에 대한 이런 허술한 이미지 때문인지 요즘은 동네 어르신들 조차도 이 말을 쓰지않는다. 그럼 집수리는 틀리고 리모델링은 맞는 말일까? 사실 ‘再’로 해석되어 ‘RE’로 시작되는 어휘는 그것 말고도 많다. RE-NOVATION, RE-GENERATION, RE-STYLE, RE-STORATION, RE-FURBISHMENT, RE-FORM, RE-PAIR, RE-BUILT, RE-VITALIZATION, RE-CYCLE, RE-NOVIERUNG, RE-NEW, RE-MARK 등도 있으며 요즘은 RE-DESIGN, RE-USE도 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대신한 중수重修, 중건重建, 중창重唱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민가보다는 궁궐이나 사대부의 집처럼 어느 정도 규모와 형식이 갖춰진 집에서 사용했다. 외국의 경우도 자세히 보면 그 쓰임에 따라 용어의 선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가령 RE-FORM은 유행이 지난 것을 다른 용도로 바꿀 때, RE-FURBISHMENT는 시대흐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지칭할 때 사용되며, RE-GENERATION은 건축 뿐 아니라 인프라를 포함한 마을, 도시 등 넓은 범위를 대상으로 ‘재생’의 의미로, RE-USE는 실제적으로 고쳐지는 대상이라기 보단 어떤 흐름이나 무브먼트에서 개념어로 사용된다. 이렇게 때마다, 용처마다 용어 선택이 다양한 이유는 영어의 언어적 속성과도 관련있다. 반면 우린 ‘거시기, 머시기‘처럼 비슷한 상황을 한 단어로 묶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식으로 통칭하는 것이 바로 리모델링이란 외래어다.
그래서 수리되는 대상이 공간이든, 하수도든, 도시나 마을이든, 인프라든, 어느 집 부엌이든, 대형건물의 외피든, 철지난 쉐터의 변형이든 모두 리모델링이라고 부르고 그 해석과 용처는 듣는 이의 몫이 된다. 그렇지만 영어권에서 이런 식의 말이 통할 리 없다. 우리가 원하는 뜻으로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시비에도 불구하고 수리修理라는 말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닦을 수修, 다스릴 리理….. 이처럼 멋지고 지성적이며 합목적적인 말을 우린 잊고 있었다.

수리멸종修理滅種  어휘의 소멸은 대상에 대한 표현이 불필요해서인데 집수리는 아파트먼트와 상관있다. 주택의 고질적 문제였던 연탄가스 중독, 단열부족, 결로, 외풍,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처리, 정원관리, 방범, 이웃과의 경계로 인한 분쟁등 거주 당사자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아파트의 등장으로 일시에 해결되면서 수리할 것들도 줄어든데다가 그 마저도 대부분은 관리주체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도권 과밀화를 해결하려는 청약저축, 신도시 이주권장에 따라 아파트가 재산의 증식과 중산층편입의 수단이 되면서 주택밀집지역인 강북의 구도심은 재개발, 재건축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집의 낡음은 수리의 대상이 아니라 낡음을 증명함으로써 아파트와의 교환수단이 되면서 집수리라는 말도 함께 사라져 갔다.

멸종의 또 다른 이유는 직업의 전문화다. 어찌 보면 근사하게 들리는 이 말의 속성은 분화가능한 말단까지 쪼개진 수직의 갱도와 같아서 그 깊이를 더할수록 서로간의 이동이 어려워진다. 애초에 종합체로 태어난 인간이 “당신은 이것만 하면 되”라는 세분의 대상이되면서 타 분야와의 경계가 강해졌고 그 언저리에 있던 기능들은 퇴화를 거듭했다. 그러다보니 전구가 나가도, 단추가 떨어져도, 실밥이 터져도, 삽의 손잡이가 부러져도 각각의 전문가를 부르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희한한 것은 정작 이런 세분의 원조격인 서양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가드닝한다며 마당을 가꾸거나 고작 처마 밑둥을 칠하는 일인데도 거창하게 점프슈트를 입고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장갑을 낀 요란한 복장의 노부부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고, 어지간한 동네에는 수리에 필요한 것들을 갖춘 대형 마켓이 있고, 어지간하면 집집마다 수리(메인터넌스) 매뉴얼을 한 두권씩 가지고 있고, 어지간하면 집을 통째로 짓기라도 할양 장비로 가득한 창고를 가지고 있지만, 우린 어지간하면 전문가를 부른다.

수리지향修理指向  물론 수리는 집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나 시계도 수리하며 옷, 가방, 자동차, 선박, 동네와 국가도 수리한다. 비가 새면 ‘지붕수리’를 했고 둑이 무너지면 ‘밭둑수리’를 하는 것처럼 대상이 집이면 ‘집수리’가 되는 것이다. 집도 다시 나누면 물, 길, 빛, 축軸,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虛 등으로 세분되는데, 여기에 수리를 합하면 물의 수리, 길의 수리, 빛의 수리, 축의 수리, 터의 수리, 뼈의 수리, 방의 수리, 켜의 수리, 층의 수리, 마당의 수리, 시선의 수리, 나무의 수리, 바람의 수리, 허의 수리,어둠의 수리, 태의 수리가 된다. 그렇다면 물, 길, 빛, 축,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어둠, 태는 왜 수리를 해야만 하는 것 일까. 그것의 긍극적인 목적은 집수리 자체라기 보다는 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려 는 것이다. 집은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서 우리가 정한 주제는 ‘집수리’입니다. 흔히 리모델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집 중에서도 주택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주택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집의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주택의 주거 환경과 물리적 상태가 심각한 지경입니다. 특히 1980년대에 지어진 보급형 주택들은 구조와 설비의 노후화, 생애주기의 한계, 단열, 소음, 일조권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날림 공사가 이루어진 탓도 있지만 낡을수록 재개발과 재건축에 유리했으므로 낡도록 방치해서 멀쩡하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우리의 주거를 주도했던 아파트의 효용이 점차 엷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염려는 주택에 대한 또 다른 방임(Banlieues)으로 그동안 아파트 외에는 다른 대안을 만들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집수리’야말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사회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8서울문화의 밤 참여 리플릿 중에서

수리소개修理紹介  그 당시 서울시는 ‘서울문화의 밤’이라는 행사를 했는데 그 프로그램의 하나가 ‘건축가에게 말걸기’다. 건축에 대한 건축가와 일반인의 정서적 차이를 대중에게 소개할 사람으로 내가 지목되었다. 우린 하루동안 존재하는 설계사무실을 차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택하여 건축잡지와 건축가들이 후원한 건축모형, 제도판을 준비했고, 실제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후배, 제자가 모여 실장, 부장, 대리를 맡아 방문할 손님의 종류에 따라 역할을 나눴다. 민원, 건축허가 등 실생활과 가까운 상담은 현역 건축사인 최소장이, 대학진학, 진로상담은 친절한 두호가, 공사비, 주변민원은 실무자인 태경이가 하는 식이었다.

첫번째 손님
우리 설계사무실을 방문한 첫 손님은 면목동에 사는 아저씨였다.
스포츠머리의 그는 행사장 주변을 한참 배회하며 인근 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파전과 막걸리를 드신 후 우리에게 왔다.
“저기…. 내가 다가구 주택을 지으려고 그러는데 어떻게 건축업자와 계약을 하나요?”
“우선 설계를 한 후 건설업체들로부터 견적을 받고 업자를 결정하십시오.”
“공사 계약서는 어디서 구해요?”
“서류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요…. 건축사도 업자랑 다 ‘짜고’ 한다면서요….”

두번째 손님
마흔 중반쯤되는 두 분의 아주머니였다.
“집을 리모델링할려구요. 근데요……공사는 이미 시작했어요. 근데요……공사가 중단되었거든요. 민원 때문에요. 아니다…정확히 말하면 민원이 아니고 구청에 걸렸(적발)어요. 증축신고를 안하고 공사를 했다는 이유로요.”
“아니 왜 신고를 안하고 했나요?”
“목수 경력 30년이라며 자기가 책임질 테니 걱정말라고 해서요.”
“어떻게 책임을 지던가요?”
“그냥 미안하게됬다고 하죠 머, 좋은 분이거든요.”세번 째 손님
이번에는 어린 손님이었다. 밤송이 같은 상고머리를 한 일곱 살짜리 소년이 한손은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엔 쭈쭈바를 들고 왔다. 이 무더운 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엄마, 아빠, 형아를 따라 부천
에서 왔다고 했다. 그 손님의 가장 큰 관심은 전시된 모형이었다. 그것을 꼼꼼히 들여다보던 손님께선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끄덕거렸고 모형모서리 부분에 본드가 잘 붙지 않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저씨 이 건물의 구조는 머예요? 그러니까 어떤 구조시스템이냐는 거죠. 그리고 진짜 지어진 거예요? 아님 그냥 모형일 뿐이예요? 여기 창은 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
“손님께선 혹시 건축가가 되려고 그러냐?”
“예,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전 도형을 좋아하거든요.”
“조형?”
“아니요. 도형요.. 건축가가 도형을 모르세요?”
“아…아 아니…알지 아저씨가 그걸 왜 모르겠어. 어험”

일곱살배기가 도형을 말했다. 물론 그가 圖形이란 묵직한 말을 연상하며 한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쭈쭈바를 빨고 있는 그 입으로 ‘도형圖形‘이 좋아 건축가가 되기로 했다하니.
“꼬마야. 말로만 하지 말고 여기다 직접 그려봐라. 니가 가장 자신있는 집을 한번 그려봐.”
“그러죠 머.”
두 번쯤 눈을 껌뻑거렸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꼭 저처럼 생긴 나무 연필을 꼭 저처럼 움켜쥐고 꼭 저처럼 꾹꾹 눌러가며 썰매를 밀고 나가듯 그림을 그려나갔다. 쮸쮸바를 빨며.

마지막 손님
“김재관 씨? 그쵸? 맞죠?”
허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을 테이블에 얹은 그녀는 ‘일일 건축설계사무실’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손에 쥔 신문 조각을 내 얼굴 옆에 갖다 댔다.“제가 제대로 찾았군요. 호호호. 어제 잠을 자지 못했어요. 건축가를 만난다는 사실 때문에요. 집을 좀 고치려고요. 사실 애들 아빠 아는 분 중에 설계사무실 하는 분도 있고, 집 짓는 분도 있어요.
우리 아들도 건축과 나와서 지금 건설회사 다녀요. 근데 있으면 뭐해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호호호.”
그녀는 노란 공책을 꺼냈다.
“이건 그동안 제가 집에 대해 적어 놓은 공책이에요.”
“한번 봐도 될까요?”“대문, 마당, 담장, 계단, 1층 마루 배관, 2층 단열, 1·2층 보일러, 문짝, 2층 싱크대, 칠, 도배, 에어컨, 8,500만 원, 전원 속 내 집, 건축 자재 쇼핑몰, 한옥, 전통에서 현대로, 한옥의 구성
요소, 철저한 설계와 공정관리, 이영희, 단열, 환기, 벽돌 이용, 이중 구조, 국제가구 인테리어 산업대전 8.27~8.31, 정순왕후 생가, 황토 벽돌, 연와조, 슬래브 위 기와집 주택, 담장, 공사비, 도배……”초등학생용 공책 속에는 연필로 쓴 글씨들이 빽빽했다. 글씨의 어떤 획도 삐치거나 갈겨써있지 않고 마치 상감된 활자처럼 끝을 맺어 얼핏 보면 모음과 자음을 합친 집자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조사
하나까지도 흐뜨려 발음하지 않는 그녀의 발성법이나 웃음과도 닮아 있었다. 소리와 눈빛과 필체와 인식이 모두 같은 파장을 가진 그녀에게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집은 작아요. 위층을 모두 전세로 주었는데 얼마 전에 방을 뺐거든요. 집을 잘 고쳐 애들 아빠에게 선물로 주려고요.”
“선물로요?”
옷도 아니고 신발도 아니고 집을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물론 소라색 선캪을 썼다고 해서, 잦은 세탁으로 올이 풀린 셔츠를 입었다 해서, 8월의 태양 아래서도 선크림을 포함한 그 어떤 메이크업도 하지 않았
다고 해서, 최소한 일년 안쪽에는 그 어떤 파마를 한 적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생머리라고 해서, 남편에게 집을 선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집을 보고 싶습니다.”

 

수리개시修理開始  “이 집을 팔고 아파트를 살 수가 없었어요.”

강남에서 목 좋은 주택가였던 서초동은 재건축 붐으로 주택가는 점점 아파트단지로 변했고 그 흐름은 예술의 전당이 있는 우면산으로부터 경사를 따라 북쪽 도시로 확산됐다. 아파트의 나머지는 빌라라고 불리
우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들로 다시 지어졌고 단지구성이 어려운 외곽지역에 자리잡은 주택은 그 모두로부터 소외되었다. 2009년 서초동은 그랬다.

그녀의 집 앞 4미터도로는
인도가 따로 없는 무뢰(無賴)한 길이며,
남의 집 안마당을 빤히 볼 수 있는 불온(不穩)한 길이며,
그것을 알면서도 그 민망함을 빤히 삼켜야 하는 환장(換腸)할 길이며, 더운 날 민소매를 입을 수도, 아니 입을 수도 없는 애매(曖昧)한 길이며,
커튼을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우울(憂鬱)한 길이며,
맛난 음식조차 몰래 해 먹을 수도 없는 얄미운 길이다.

만약 그녀가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햇빛을 받을 수 없는 어둠 가득한 집에 산다면,
만약 그녀가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집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집에 산다면,
만약 그녀가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이웃과도 왕래할 수 없는 집에 산다면,
만약 그녀가 그 길이 아니면 눈을 둘 곳이 없는 곳에 산다면,
만약 그녀가 이런 집에서 다시 살겠다고, 그리고 그 집을 그려달라고 한다면
그때 나는 이 길을 무엇으로서 인식해야 할까?
길일까? 골목일까? 도로일까? 해자(垓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