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동 사람들  l   내가 만난 사람들  황두진유걸곽재환민규암문  훈 

 

호박할머니-만남

와룡공원은 아침 일찍부터 장이섰다.
“호박얼마예요?”
“그냥 머…천오백원 주더라고요. 어떤 이는 이천원도 주고 머….”
쑥쓰러움으로 값을 매기지 못하는 할머니가 상인이고 나처럼 새벽잠이 없어 이른산책을 나오거나 베드민튼을 치는  동네 사람들이 고객인 장터에서 호박 두개를 샀다. 문제는 문제는 산을 오르기 전에 호박을 사면 산책길 내내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산책을 마치고 오면 호박이 다 팔리거나 싱싱하지 않은 것들만 남을 수 있기에 호박을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할머니 돌아오는 길에 들르겠습니다.”
“얼마나 걸린데유?”
“머 한시간 정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할머니가 없다. 그래봐야 일곱시 삼십분인데 벌써 가신 걸까?  맡긴 것은 호박 두덩이이와 거스름 돈 칠천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 아픈가? 라는 착한 마음부터,,,,단던 칠천원을 떼먹고 호박장사를 아예 접기로 했다?라는 고약한 마음까지.
그러다 할머니를 다시 만났건 엿새후였다.
“날좀 봐유.”
“어? 만원 할머니?”
“맞쑤 만원. 왜 안찾아갔쑤 그래. 쩌그 용달차 아줌마에게 맞겨 놨는디. 아 글쎄 우리 딸년이 애를 났잖슈. 그것두 둘이나 한번에. 서방도 돈도 없는년이 말유. 그나 저나 어쩌나 그 호박 다 상했던데.”
“할수없죠. 머.”
“아이유. 그럼 못써유. 오늘 호박 새로 따온거 있으니까 이 중에서 골라유.”
“괜찮은데…”
“아이구 젊은 사람이 그럼 못써.(내 등을 때리면서). 으런이 말하믄 들어야지.”

 

 

 

할머니-호박두개

몇일 후 숲으로 가는길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아니 오늘은 왜 호박을 안사고 빤히 바라만 보슈”
“……..”
“혹시 호박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유?”
“…….”
“정 그러면 천원만 내든가. 단골잉게로. 근데말유. 호박값가지고 그러면 모써유. 이거 호박말유 보기는 우습게 보여두 그게아뉴. 새벽에 그걸 따려면 거기가 아주 모기범벅이거든. 저번엔 딸년이 파수(패치의 사투리쯤)를 사줬는데 말유 소용없슈. 바지 두개를 입어도 뚫는판에 어림도 없더라구유. 아주 아주 환장을 한다니께. 이번엔 배추도 안심었슈. 해마다 심었는데 왜 안심었는지 알아유? 머긴 머겄슈. 시방말하는 모기때문이쥬. 그런데도 호박값을 깍는다? 안되지 그럼. 젊은사람이. 안 그래유?”
“……..”
“그럼….혹시 말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구유. 혹시 돈 없슈? 호박은 먹구 싶은데 돈이 없는거 아뉴? 그래서 암말 안하고 있는거 아니냐는거유 시방.”
“………”
“내 말이 맞구먼. 그래서 암말 없었구먼. 아이구 참 호박

그냥 가저가유 그럼. 다음에 보면 이천원 주면되자나유. 젊은 사람이 어쩨 그리 숙기가 없데유? 이 험한 세상을 어쩍게 살라구 그래.”
“………”
“자자(봉투에 호박을 담아주시면서)~ 공짜로 줘도 못가저가네 참(다시 등을 때리며)…”
“……고맙습니다…할머니……..근데 제가 떼먹기라도 하면….”
“아이고 참. 나이 이만치 먹음 사람보는 눈이 생기는거유. 게다가 거기 젊은양반은 머리가 허옇차나유. 멀리서도 대번에 포가나거든유. 여기 사람들이 다 알아유. 젊은 사람인데 머리 희고 애호박잘사가고, 배꼽 내놓고 다니고, 암만 인사해도 대답안하는 사람으로유. 그런 사람이 어쩍게 띠 먹겄슈. 멀리서도 대번엔 포가 나는데 멀. 근디유 저 내일 안나와유. 모래도 글피도유. 왜그런지 알아유? 호박이 있어야지 나오쥬. 그게 머 하루만에 열리구 그런게 아녀유. 호박도 익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당게라. 사람과 똑 같아유.”
나더러 젊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러번을. 그런 할머니의 호박값을 뗘먹을수는없지. 암만

 

호박할머니-호박여섯개

“또 호박 한개에 얼마냐고 물어볼라고 그러쥬?”

이제는 할머니가 말을 먼저건다.

“추석이되고 찬바람이 부니께유 호박이 잘 안영글어. 더디 익지. 그대신 맛이 더 좋아. 요새 호박은 가셔가서 바로 말려유, 그라고 겨울대면 그 눔을 물이 뿔렸다가 들기름에 달달 볶으면 맛있지유..”
“호박이 안나오면 할머니는 이제 못보겠네요.?”

호박을 들고 산으로 가려는데 소매를 잡는다.
“이봐유 휜머리…. 아니아니 젊은양반. 그거 가지구 산에가려구유?”
“그럼 어쩨요. 할머니가 가지고 오신 호박 여섯개 제가 다 샀으니 이제 가셔야할거자나요.”
“그건 그렇지만 사나가(사나이가) 식전 댓바람부터 호박을 들고 산에를 올라가면 사람들이 머라고 허겄시유. 남 부끄럽게. 여갔다 놓고가유. 갔다올때가지 기다릴텡게. 그런디 바빠유 시방?’
“왜요 그건.”
“머하는 사람이래유? 맨날 호박만 사가구. 궁금해 죽겠시유. 나만그런게 아녀유. 와룡공원 늙은이들이 모이면 다들 거기 이야기헌데유, 희안한 사람이라구유.”
“할머니가 보기에 머하는 사람같아요?”
“그걸 모르니께 묻는거지유 시방. 젊은 사람이 새복(새벽)에 일어나서 해가뜨기도 전에 산에 올라가고…“
“피부는 이십대인데 대가리는 허옇고,배꼽 내놓고, 인사도 안받고, 호박 흥정 붙여서 호박금 내리고, 돈도 남편도 없이 딸을 둘이나 낳은 딸내미 잘있냐고 그러고?”
“마쓔, 잘아시네 멀.”
“집 수리 업자요”
“목씨(수)?”
“예, 비슷해요. 수리할거 있으면 말해요. 특히 변소막히거나 귀신도 모르게 비가 샌다거나 하는거 있음…. 싸게 해줄께요. 호박값도 깎았으니….”

산을 내려오니 할머니가 비닐봉투를 쥐어주신다.
“이거 머우대유(머위). 밭뚝에서 자란건데. 끊은물에 살짝대쳐 껍데기 벗겨서 들께가루 넣어서 묻혀먹어유. 머우는 약이래유. 우리 영감이 접대 디스답배 사준거 너무 고맙다고 새복(새벽)에 떠날때부터 머우대 가져가서 휜머리 양반주라고 신신당부 하더라구유. 그 냥반이 어지간 하믄 다른 사람과 말을 안섞는데 어쩍게 꼬셨길래 머우대 까정…참나 별일이네유.”

 

 

호박할머니-호박세개 그리고…

오늘 좌판은 더욱 푸짐했다. 호박, 호박잎. 머위, 곰취, 달래, 씀바귀,고추까지.

“할머니 오늘은 머 이리 많아? 집에서 곰취도 키워?”

“아니지. 내가 어제 그제 강안도 갔다 왔거든요. 거기서 캐온거쥬.”

“곰취캐러 강원도까지? 차비나 나와? 그럼 혹시….?”

“그렇죠 머. 그 싸가지 없는 년이 돈도 남편도 없이 한꺼번에 둘이나 싸질렀으면 잘 살아야 자나요. 왜 아프고 지랄여 그래. 지가 잘한 게 머있다고 아프고 그러냐고. 새끼덜은 아직 갓난아기인데. 어미가 아프니 젖도 못 물고 그러니 어쩍게 안갔다오것슈. 아무리 미워도.”

“잘 갔다 오셨어요, 근데 호박 한개에 얼마래요?”

“왜 그건 맨날 물어유. 잘 알문서. 와룡공원 호박금 다 내려놓은 게 누군디. 천원이유 머!.”

“근데 할머니 내가 육천원만 가지고 나왔거든?”

“근데 어찌라구유?”

“난 할머니가 호박만 가지고 나올거라고 생각한거지. 근데 됴우우달래며 그런거 가지고 오면 어떻해. 안그래? 근데 저 달래는 참 맛있겠다.”

“그러니께 육천원에 호박 다섯 개와 달래까지 달라는 거지유 시방? 인자 다 알아유. 젊은양반 수법을 유. 암말안고 가만있는걸 보니께 요 옆에 있는 고추까지 달라는 거쥬? 그렇다구 외상은 생각두 말어유. 영감한테 맞아 죽으니께. 아참 몇일전에 우리 영감에게 호박사갔다믄서유? 아니 그래 호박을 천원에 사갔다고 다 소문내면 어쩍허유 그래. 영감이 지랄지랄하자나유. 요새 담배값도 올랐는데 호박 값만 내려간다고요. 이 양반때문에 내가 못 살어.”

“그러게. 할머니 이렇게 팔면 용돈도 안되겠다. 그치?”

“얼른 호박이나 가꼬가유. 젊은 사람이 무슨 말이 이렇게 만데유 그래?”

다음엔 할머니 집에 가자고 해야겠다. 할아버지 디스담배 몇갑사고 막걸리도 한병사서..

 

호박할머니-라이발.

와룡공원은 생태계가 변해갔다. 좌판중심의 장터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상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호박할머니는 가격에서도, 품질에서도, 비쥬얼에서도 경쟁이 않됬다.
“할머니 보따리 안펴?”
“펴봤자 상대가 안된게로. 생각해봐유 내가 파는 삼천원어치랑 저 아저씨가 공주서 가저오는거랑 상대가 안되잖유. 그까짓거 팔아봤자 얼마되도 않고,,,,에휴.”

군밤굽는 기계도 드럼통을 반을 쪼게어 장작불를 지피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전기를 연결한 코일에 의해 구워졌고, 밤을 계량하는 것도 되박이 아니라 전자 저울을 이용한 정확한 계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포장용기도 검은 비니루가 아니라 로고가 새겨진 하얀 봉투였다. 말하자면 동네가게 옆에 이마트가 들어선 겪이었다. 입심은 얼마나 좋던지…
“걱정마세요. 이 밤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으면 바로 달아집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맛 없으면 이 봉투에 적힌 제 핸드폰으로 전화해주시면 전량 리콜합니다. “

냉장고에 밤을 넣으면 밤이 달아지고 맛이 있어진다? 맛없던 밤도? 이건 또 무슨말일까? 궁금해서 견딜수가 있나?
“아저씨. 냉장고 밤을 넣으면 탈수가 되니까 당도가 올라간다? 이 말씀?.”
“딴에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바로 비 전문가의 한계!.”
“한계? 그럼 왜 밤이 달아지는지 말해봐요.”
“살려고!”
“살아? 누가? 아저씨가?”
“아니..밤이.”
“머시라 밤이?”
“무신말이냐면요. 온도를 낮추면 예네들이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몸을 바꾸워요. 그냥 있으면 말라비틀어 지거나 얼어 죽응게요. 살려고 당도를 높이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꿀이 겨울에 얼어요?”
“안얼어요.”
“소금이 겨울에 얼어요?”
“안얼어요.”
“조청이 겨울에 얼어요?”
“안얼어요.”
“잘아시네. 바로 그거여요. 살려고 당도를 올리고 당도가 올라가니까 안 얼고 그러니까 맛이 있는거지요. 양수가 얼마나 짠지 알아요? 그리고 왜 짠지 알아요?”
“아저씨! 왜 아저씨는 내가 모르는 것만 알아요? 세상에 양수가 짠지 아는 사람이 어딨어? 너무 번하거나 곤란한 질문만 골라서하는 것 같아. 근데 무슨 양수? 사람양수? 그걸 먹어봤단 말요?“
“그걸 어떻게 먹어봤겠어요?내가 먹은 건 소 양수.”
“소? the bull?”
“제가 몸이 약해서 금방 죽은 소 그러니까 임신한 소가 밴 송아지를 구했는데 빵빵한 애기보를 송곳으로 푹 쑤시니까 물이 콸콸나오는데 그게 바로 양수라. 그래서 그걸 조금 맛을 봤더니 이건 완젼 소태라, 바닷물.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송아지는 괜 찮겠지 싶어서 삶아서 먹었는데 그것도 소태라. 삼십만원이나 주고 간신히 구했는데 먹을 수가 없는거야.”
“좋아 그건 사실이라고 쳐. 아깝다고 치고. 30만원이라고 치자고. 근데 소 양수와 밤의 당도가 무슨 상관이란말요?”
“참 답답하시네?”
“답답? 내가 살면서 성질 급하단 말은 들어봤지만 군밤장사에게 답답하단 말은 오늘 또 첨이네 이거.”
“보시우 흰머리양반. 이 군밤장수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오. 여기 있는 밤이 다 같은 밤 같죠? 아님니다. 요쪽은 좀 작고 이족은 큰데 어든게 더 맛있게요?”
“아씨. 이젠 좀 묻지마요. 그냥 답을 말해. 아저씨가 맘속으로 정한 답을 그냥 말하라고, 내가 맞아도 다른 답을 정답이라고 말할거 아냐? 자기가 답을 정하니. 하지만…. 왠지 작은게 더 맛있겠는데?”
“마자유. 큰눔은 왜 맛이없냐면 추석 이후에 익은거거든. 작은 눔은 추석전에. 사람들은 무슨 밤을 추석전에 따느냐고 그러지만 그래서 그 눔덜은 군밤장사로 돈을 못 버는거야. 추석이후 밤은 구워도 맛이 없어. 그리고 구워도 속껍질이 딱 달라붙어서 안까져. 그러면 어떻에 하느냐. 약을 탄물 하루를 푹 뿔려 그러면 잘 까지지만 그 대신 소화는 한 삼일 동안 안되야.”
“이런….”
“그리고 수박있자나요. 수박도 고냉지 수박이 맛있는데 왜 그러냐면 저지대 수박도 고랭지 수박도 똑 같이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까 그 뿌리를 통해 양분을 빨어들이는 건 똑같애, 근데 고냉지는 밤이 되면 춥거든. 추운데 클 정신이 있느냐는 거지. 즈들도 추워 죽겠는데 크고 싶겠어? 그러니까 그것들도 살라고 당도를 높이는 거여. 근데 저지대 수박은 밤에도 안추우니까 밤에도 계속 크는거지.”
“히야 어떻게 그런걸 다 안데요? 그걸 수박이 알려주기라도 하나? 그러니까 겨울엔 군밤장사하고 여름에 수박 장사하는 거네? 그럼 여름과 겨울의 그 중간 그 기간이 응근히 긴데. 그땐 머팔고?”
“그땐 복숭아.”
“복숭아라……그것도 달게 만드는 비법이 있겠는걸”?”
“있지 그럼. 복숭아는 귀가 밝아요.”
“귀? an ear?”
“그렇지. 그 눔덜은 냉장고에 넣은면 맛이 떨어져. 한 삼일만 냉장고에 넣은면 완전 물. 얼마나 귀가 밝냐면 비온날 복숭아 따면 암 맛 안나. 왜냐면 뿌리를 통해 물이 공급되니까 얘가 게을러져.”
“복숭아가 게울러진다. 캬~ 아저씨 문학해야겠다.”
“근데 비가 오래 안온다? 그럼 복숭아가 설탕처럼 달아져. 왠지 알아?”
“살려구!.”
“그렇지! 이 양반 똑똑허네. 내가 십년 넘게 군밤 장사하면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양반 첨여요. 밤이며, 수박이며 복숭아까지 10년 동안의 비법을 하루에 줴 털렸네 오늘. 가만 보니께 군밤 장사하면 잘 하겄써. 지점 내줄까요?”

아저씨의 입심에 홀려 생밤 닷 되와 군밤 두되를 사니 지갑이 텅 비었다. 집으로 갈 무렵 평상을 바라보니 호박 할머니가 기운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왜 빤 히 처다봐유?”
“서운해?”
“아뉴. 멀유, 밤이나 실컷 사시유. 많아 구워드시구랴. 나 같은게 머가 서운하것슈?”
“할머니 난 원래부터 군밤을 안먹어.”
“………”
“그런데 왜 두봉지를 샀는지 알아?”
“몰러유.”
“할머니꺼와 할아버지꺼.”

 

호박할머니- 외로움

날이 춥다. 그래선지 와룡공원의 분위기도 가을을 탄다. 여섯시면 울리던 태권도 동아리의 상징곡인 ‘새타령’ 도 들리지 않았고 운동기구를 이용하던 노인들도 줄었다. 호박 할머니만 있었다.

“사람도없는데 왜 나왔어요. 추운데.”
“집에 있으면 머뎌요. 자꾸 딸년 생각만 나고.”
“왜 또.”
그년은 참 골고루여요. 새끼를 둘이나 내질렀으면 젖이라도 흔해야지. 돈도 없는년이 젖도 말라 맨날 우유를 맥이고. 그기 애덜에게 먹일 일은 아니자녀유. 소젖잉게. 거기다가 수돗가에서 자빠져가지고 도가니가 빠졌데나 어쩌나. 영감은 그런년 딸로 여기지도 말라고 하면서도 속이 안좋은지 오살할 담배만 피워대고. 미친년. 왜 둘은 낳아가지고. 참 환장하겄네.”

할머니 마음도 가을인 것이었다. 반면 그녀의 상술은 날로 세련되갔다. 예전같으면 가지고 나온 물건을 줴 꺼내놓았는데 요즘은 종류별도 대표되는 것들만 한 소쿠리씩 꺼내놓고 나머지는 보따리에서 꺼내질 않았다. 이렇게되면 짐을 푸는 시간도 적고 짐을 쌀때도 효율적일 뿐만아니라 고객으로 하여금 보따리속을 상상하게 할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우위에 있게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속셈이 있었으니.

“할머니 저 밤 얼마야?”

“삼천원”

“다른거 말고 저기 저 소쿠리에 담긴 저 밤말이지? THAT 밤!”

 

여기서 조심할 것은 바로 ‘저 밤’이라는 용어다. 만약 그냥 밤이라고 한다면 할머니는 소쿠리에 진열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따리에 들어있는 검은 비닐에 쌓인 밤을 줄 것이 뻔하다. 말하자면 소쿠리에 꺼내놓은 밤이 가장 실하고 분량도 많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밤’이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뻗어 소쿠리를 정확하게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양반때문에 내가 못살아. 호박금도 그리 내려 놓더만…아니 그래 보따리에 있는걸 또 어떻게 알았데 그래. 생각해봐유. 밤이 어디 그리 많아? 올게(올해)는 가물어서 산에 밤도 없는데다가 새복부터 동네 사람들이 사방을 뒤지고 다닝게 채비가 안돌아와유. 게다가 산밤은 여느것과 달라서 달거덩. 달면 벌레가 금방 쓸어요. 산밤이 그래 벌레 쓴놈도 있고, 작은 눔도 있고, 시간이 되야 말른 놈도 있는데 그중에서 젤 좋은 눔만 쏙빼가면 어쩨유 그래.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당게.”

“보따리 풀러봐요. 머있나보게.”

“풀렀다 안사면 어쩌구.”

“그건 내맘이지. 풀르기 싫으면 말구. 나 가우.”

“젊은양반…저기유….”

그래봐야 모두 세봉다리였다. 그러면 구천원이고 천원을 거슬러 주어야 맞지않나? 그런데도 잔돈이 없다면서 솎은 상추로 대신했다.

“하나씩 먹기엔 너무 작은게 이렇게 여러게를 모다서 밥을 얹혀서 드셔유.”

할머니의 수가 점점는다.

 

호박할머니- 엄나무순

이른 아침 할머니가 집에 왔다. 엄나무 순을 따야 하는데 키가 안 닿고 사다리를 놓고 싶어도 허리가 아파 안된다며 ‘할 수 없이’ 왔다고 말했다.
“조건은?”
“그동안 내가 갖다 받친 호박,머우,상추,두릅만해도 얼만데….”
“좋아 그럼. 내년부터는 오대오로. 올해는 재능기부. 대신.”
“대신 머유.”
“옛날 연애이야기 해”

할머니는 충청북도 진천 사람이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오빠,언니와 살다 헤어져 서울로 왔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촌에서 서울로 시집을 왔데?”
“서울이면 좋게유. 현리여유. 진천보다 더 골짝. 그것도 열 여덜에. 언니가 시집을 가면서 뿔뿔이 헤어졌어유. 그 질로 서울로 왔쥬.”
“시집을 가면 동생들은 데리구 가야지.”
“아홉을유?”
“좀 많군. 서울에 와선 멀 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이야기를 쭉해봐. 엄나무 순 따는데 집중할수있도록…”
“덴뿌라 장사 유. 삼선교 시장에서. 아주 잘 되는건 아니지만 혼자 몸 땡이 살정도는 됐쥬. 근데 근처에 떡집이 있었는데 저 인간에게 중매를 넣다라고유. 싫다는데도 좋은 혼처라고, 처녀 혼자살면 못쓴다고, 금 좋을때 시집가라고, 하도 그러니께 한번 봤쥬. 영감은 그때 시어머니랑 화잘품 장사를 했거든유. 쥬단학.”
“첨에 만나니까 전기가 와?”
“요새것들이야 사랑이니 머니 지랄하지 우리 쩍엔 멀 아나유. 열여덜이 나인가유 머. 애기지. 식도못올리구 그냥 살았어유. 덴뿌라 장사도 그만두고 화장품을 가방에 넣고 팔러다나고. 그래도 서울이 좋았는데 갑자기 현리로 가게 됐어유. 삼선교시장이 불법건물이라며 헐렸거던유. 그질로 알던 사람들과 다 헤어지고 영감이랑 둘이만 산골짜기에 가서 농사를 졌는데. 그래도 나 한테는 지게질이나 삽질은 안시키데요. 그런데 사는게 말이 아니어요. 거긴 산삐알이라 논도없어요. 다 밭이지. 그것도 돌밭이라 콩밖에 안되는데 콩만 먹고는 못 살자나유 사람이. 나가살자구 했쥬. 원사 사우에게 시집간 년이 그때 다섯살인가 였는데 젖이 말라 멕일게 있어야쥬. 너무 어릴 때 애를 나서 그런지.”
“그런 이야기히면 안 챙피해?”
“한번 늙어봐유 챙피하게 얼마나 호강스런 말인지 알텡게로…”

그리곤 엄나무 순이 왜 가시가 많은지,가시 많던 엄나무도 어느정도 굵어지면 가시가 사라지고 매끈한 줄기를 갖는지, 봄에 나오는 새순이 왜 입을 벌리지 못하는지. 따뜻한 날 돋는 새순은 처음부터 왜 잎이 벌어지를 말해줬다.
“근데 할머니 내년에 허리 더 아프면 저 나무들은 다 어쩌나 그래.”
“무슨 맘 먹는지 다 알아유.. 다 가시세요.”
“정말?”
“참말여유 엄나무 다섯개랑 두룹 일곱개.울타리는 넘어가지 마유. 그 사람들 얼마나 사나운지 걸리면 발목아지 부러징게로. 밤나무 아래 상사화 무데기, 수선화, 쑥부쟁이….성북동 이사온 이듬해 매실씨를 심었는데 저렇게 큰 꽃이 때까지 살았네유 내가. 그 매화까지….그리고 아직은 없지만 저짝 밭에는 취나물 천지여유. 그거 다 따드셔유. 난 젊은 양반처럼 셈이 없어서 오대오니 삼대칠이니 모르니께 배가 터질때까지 다 드세유.우린 아파서 죽거나 말거나………….저기유. 그 엄나무 순 너무 삶지마유, 물이 끓릉가 싶을 때 넣다가 바로 빼요. 그리고 초고치장에 찍어먹지 말고 소곰에 살짝 찍어 먹거나 들기름 있으면 둘러도 좋아요. 깨소곰도 다 필요없고 마치 들기름하고 소곰만유. 혹시 안주인한테 말해봐유. 할수 잇는지. 그걸 보재기에 쪼옥 짜요. 그리고 된장을 한 숟가락? 아니다 한 반 숟가락 넣고 버물버물 하다……

 

호박할머니-선물

딸의 출산으로 한참을 못 볼 것 같다며 집으로 오셨다.
“새끼를 낳아도 분수 껏 낳야쥬. 이 늙은 애미를 언제까지 부려먹으려고 그러는지. 그나저나 암만 늦어도 배차씨 뿌리기전에는 돌아 와야하는데, 그래야 또 요번 겨울을 넘기쥬.”
“얼른 오세요.”
“비류(비료)를 안 넣었더니 가지가 비들비들하니 좀 질겨유. 남덜은 나더라 왜 비류를 안넣냐고 그러는데 대번 다르거든유. 호박만해도 요런 여리여리한 색이 안나고시커멓게 죽어유. 접대 한약 지기미 다섯포대를 사만원 이나주고 뿌렸는데 포도 안나네요. 언제까정 그걸 할수있을랑가 모르겋지만…”

 

호박할머니-팔뚝녀

이른 퇴근길, 오랫만에 할머니 댁을 들렸다. 그녀의 집은 성벽을 따라 내려오면 우리 집의 반대편 마을의 끄트머리여서 퇴근길에 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했지만 오이소박이에 들어갈 부추를 사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할머니 집 앞 텃밭에 서넛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무언가를 웅성이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묵묵히 채소를 다듬고 있었지만 체격이 큰 한 여인만이 소매를 걷어붙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음엔 동네 사소한 말다툼인가보다 했는데 저만치 마을버스 종점께에 순찰가가 나타났고 골목으로 올라온 두 명의 경찰관이 팔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손가락이 호박할머니 집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무슨 변고가 있음을 알았다. 팔뚝이 경찰을 부른 것이다.

“저깁니더. 숭악한 도적놈들이 사는 집이”
듣자하니 팔뚝녀가 농사를 짓기 위해 밭둑을 보수했는데 엉뚱하게도 할머니가 호박을 심었다는 자신이 돈을 들였으므로 다른 사람은 농사를 지어서는 안된다고 주장을 하다가 아무도 호응하지 않자 결국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할머니 계세요? 경찰입니다.”
두 경관의 몸집만으로도 꽉 찬 마당으로 호박할머니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민소매 런닝 차림의 할아버지가 그 뒤를 따라 나오시고…. 아마도 처음이었으라. 백합과 붓꽃과 봉숭아 꽃으로 가득한 자신들의 정원에서 경찰관의 호출을 받은 것은.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와 월남치마 속에서 꼬챙이 같이 마른 다리를 떨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할머니에 비해 팔뚝년의 기운은 일대를 덮었다.

“할머니, 여기가 할머니네 땅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남에 땅에 농사를 지면 되요?”
“…그건 안되지만…”
유감스럽게도 분위기는 할머니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안타까왔지만 나설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도 없는 처지였는데 나를 발견한 호박할아버지가 도움을 청했다.
“젊은 양반…우덜은 잘못인지 아닌지도 잘 몰라.”

이쯤 되면 운명. 우선 남방 단추를 풀어 아랫배를 상스러이 해방했다.
“그럼 여기가 아주머니네 땅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남의 땅에 호박을 심는 것이 잘한건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땅 주인도 아닌 사람이 땅 주인도 아닌 또 다른 사람이 심은 곡식을 허락없이 뽑을 수는 없습니다. 설혹 땅의 주인이라도 그렇게는 못 합니다. 여긴 서울시 땅 입니다. 채비지요. 아무도 경작할 권리가 없지만 누구도 경작을 못하게 할 권리 또한 없다는 것 입니다. 서울시 말고는. 아줌마가 서울시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근데 아저씬 누구죠?”
“내가 누군지보다 여러사람 앞에서 공연히 모멸적인 욕설을 하는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고 죄 없는 이를 고발하는 것은 무고인 동시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합니다.”
“변호사?”
“내가 누군지보다 나의 말이 맞느냐 틀리냐가 중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덜…..팔뚝이 아까 할머니에게 쌍욕한거 다 들었죠? 지네 땅이라고 우기는거 들었죠?”
“…야아”

늦은 저녁 초인종 없는 우리 집 대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호박 할아버지. 보자기에 싸인 부추, 쑥갖 그리고 붓꽃 모종. 나는 그 답례로 고향에서 배달된 막걸리와 살구를 대접했다. 그나저나 어쩐다… 온 동네여인들에게 배꼽을 보였으니. 부끄럽도다.

 

호박할머니-두룹나물

할머니가 오셨다. 교통사고가 나서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는데 동네에서도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가 없었다. 봄날 두릅순을 따서 삼선교 시장입구 육교아래서 팔고 돌아오는 길에 오토바이와 부딪혀 다리가 골절이 됬는데 그길로 소식이 끊긴 것이다.
“보상은?”
“워쩌케 보상을 받는데요. 안적 핏대기도 안 마른 애기던걸. 연락처도 모르고….”
“답답하네.”
“누가 할 소릴를 유. 근데 그건 머여유? 봉다리에 싸온거. 허이구…보기보단 인정 있네요. 별일.”
할아버지는 벌써 막걸리를 사오신다. 오늘 안주는 살구다.

 

호박할머니-충신시장

모종을 사러 호박할머니에게 갔다. 동네에서 호박을 팔던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 농사를 지을 수 없게되자 충신시장에 모종을 파는 좌판을 냈는데 장사가 제법 됐다. 찬바람이 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게앞에 모여있었고 난 그틈에서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다 작년에 재미를 본 르꼴러와 오크린 서너개를 고르자 그것을 본 할머니가 양손을 겹처 X자를 만들었다. 사지말란 신호였기에 그것대신 캐일과 당귀를 새로 골랐는데 이번엔 양손대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져었다. 가을모종 시장은 물건이 적어 그것 말곤 마땅히 고를것이 없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나에게 신호하는 것이 재밌어 이미 골랐었던 당귀를 또 다시 집어들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내 소매를 끌고 좌판 뒷쪽으로 가선 낮은 소리로 간곡히 말했다.
“죽어…….”
“머가. 캐일? 르꼴라?”
“다.전부다”
“그럼 죽을걸 왜 팔아?”
“내가 파는게 아녀유. 사람들이 사가는거쥬. 찾으니께 갖다놓은거고.”
“말이되?”
“암말말고 내 말 들어유. 다른건 다 죽어유, 몇일 크다말든가. 상추를 사유. 상추도 다른거슨 말고 꼬슬거리는 적치마상추로. 아삭이는 죽응게.”
“상추도 얼텐데”
“얼쥬. 그런데 내말들으면 얼어도 안죽어유. 상추를 심구고 얼마 안있음 서리가 내릴거여유. 그러면 사람들은 인자 상추 다먹었구나 하고 뽑아내는데 그때 가만 놔둬야해유. 얼핏보면 물묻은 종이처럼 축처저있지만 그렇다고 서리를 털어내거나 긁어내면 절대 안되유. 다 죽은 것 같아도 해가나면 고대로 살거든유. 대신 눈이올땐 살짝 덮어유. 그럼 이듬해 봄까지 까딱없슈. “

 

삼천리슈퍼.

오늘이 우리집냥반 기일이네요. 발쎄 삼십년되야가는디…….”

이런말을 흘려들으면 이 동네서 못산다. 봉다리에 담긴 막걸리를 다시 풀고, 짱구 한봉지를 집어 가게 문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가 스물셋에 여글왔어요. 봐 60년이 된거지. 시집은 스물한살에 가고. 그땐 신랑한테 시계, 양복, 코트를 해줘야 시집가는디 난 그걸 모뎌. 아부지가 가난헝게. 그러니께 사람들이 애딸린데 재취로 가래. 난 그건 싫은거여. 내가 왜 흔거에게 시집을 가냐 이거지. 그러다 남의집 살이하는 사람……말하자믄 머슴살이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간거라. 그때 부산이면 최곤 줄 알았지. 우리집은 저기 여수하고도 섬 잉께.

“어떻든가요?”

“가보니 주인집의 문간방이라. 거기서 이태를 살구 서울로 온거지. 큰 아들을 데리고. 갸가 살았으면 육십여섯인디 열 서이에 여기서 죽었어. 그럼 나가 왜 명륜동까정 왓냐하믄. 그 냥반 형이 먼첨 와 이 동네서 살았거든. 시아주버니가 집을 짓는 사람인디 지금 이집을 우리말고 다른 또 한사람에게 같이 판거라. 그러니 어떻겄써. 여태꺼정. 근데 즈아부진 말도모더고 술만 처먹어. 즈그 성인게로. 그나마도 일찍 죽응게 사람들이 날 얕봐. 여기서 술처먹고 물견을 외상하고도 안그랬다고 잡아떼고. 난 그래도 남욕 한번도 안했네. 하믄머뎌. 내 입만 드러지지. 개잡놈아 하면 머하냐고, 야이 씨벌눔아 하믄 머가 달라지냐고…..”

말하는 내내 할머니는 웃었다. 큰딸이 없는집에 시집갔다면서도, 가게에 딸린 작은방에서 다섯식구가 살았다면서도, 온종일 삼만원을 못번다면서도, 내가사는 집옆엔 절이, 그 앞엔 교회가 있었는데 자기네로 오면 복을 받는다고 하길래 나에게 필요한건 복이 아니라 밀린 빛을 갚는거니께 그걸 갚아주면 두군데 모두 나가겠다고 했더니 그 후론 두군데 모두 찾아오지 않더라면서도. 그렇게 웃지 말아야 할때도, 웃어야 할때도 내내 웃는건 웃음이 아니라 웃음짓는 얼굴로 굳은 표정일지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둘째 며느리로부터 제삿상 아래에 과일을 먼저놓냐 밥을 먼저놓냐는 묻는 전화가 올 즈음 마을버스 사장이 가게앞을 지나며 희끗 웃는다. 오늘도 한잔 하시네? 이거다. 아침엔 채마밭을 갈며 언제 쯤 낙향을 할꼬했는데 한나절도 안지난 지금은 “이 동네서 그냥 살으까?” 싶어진다. 끄억.

 

군고구마 아저씨-살려구

와룡공원…작년에 왔던 군밤장사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 머가 그리 재밌쑤.”
“제가 멀 보냐면요 우리딸의 시동생, 그러니께 우리 사우의 동생, 말하자믄 우리 사둔의 둘째,,,,,더 쉽게말하면 우리 외손자의 삼춘이 장가가는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요. 요새는 결혼식장에서 춤을 추데유? 첨엔 우리 사우가 춤을 추더니 쫌 있다가는 그 동상이 나와 둘이서 같이 춤을 춰유, 봐유. 그러다간 아부지….그러니께 우리 사둔이 나와 춤을 추더라구요. 봐유 이 화면. 야중에는 사부인까정 나와서 춤을 추더라니께유.”
“그러네요. 근데 ‘야중에’는 충청도 사투리죠?”
“사투리 아녀유. 표준말여유 그거.”
“…………에이”
“진짜유……야중에가 머냐믄 유. 나중의 그 다음,,,,,,,,,,그러니께 ‘나중보다 쪼금 더 있다가‘를 야중에 라고 하는거여유.”
“………..말두안되. 작년에 소 양수를 먹었다고 뻥을 치더만..”
“아녀유. 천안에선 그렇게 써유. 가령 ‘가께’란 말 이짜너유? 그건 무슨말이냐믄 ‘갈게’보다 더 빨리가겠다는 뜻이구유,,,,,또 ‘즘심‘은 ’점심‘보다 늦게 먹는거,,,,,그러니께 ’늦은 점심‘을 ’즘심‘이라구 해유. 우린 실지루 그렇게 써유. 제가 말을 왜 져내유 그래.”
“그럼 ‘사우’는 ‘사위’의 동생이겠네?”
“그건 다르쥬. ‘사우’는 보통사위보다 더 아끼는 사위를 ‘사우’라구해유.”
“그럼 사둔은 사돈의 부인? 아덜은 아들의 오빠? 동상은 동생의 동생?”
“,,,,,,,,,”

청하지도 않은 딸의 어린시절부터 시집가기전까지 사진을 하나씩 넘겨가며 설명하는 사이 타닥이며 군밤이 익어갔고 우린 누가 손님인지도 잊은채 밤을 까먹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국산 밤이 국산보다 더 비싼 이유, 군밤 굽는 기계를 데스크탑 컴퓨터를 개조했기 때문에 휀을 돌리면 군밤이 두배 속도로 구워지는 원리, 챗바퀴처럼 생긴 군밤통이 거꾸로 돌리면 쏟아지는 이치, 군밤이 익어가는 소리와 뜸이 드는 소리를 구분하는 방법, 뜸들인 밤과 뜸을 들이지 않은 밤의 맛과 쫀득함의 차이, 마른밤을 순하기 하는 방법, 오랴된 밤의 속껍질을 쉽게 벗겨내는 방법을 말했다.
“근데 이런 이야기들은 책에 나와요? 아님 그냥 혼자 생각?”
“세상에 그런 책이 어딨어유, 살라구 그러는 거예유. 추워지면 밤이 안얼려고 당도를 높이는거 처럼 지두 살려구 그러는 거여유. 작년에 다 이야기했자나유, 복숭아두 비가오면 당도를 내린다구. 지가 가을두 추석 이후엔 배를 팔고 야중에는 군밤팔고 , 겨울겐 꼬막, 그리고 봄엔 뻥튀기, 그리고 더 야중엔 복숭아를 파는게 다 같은 이유여요. 살려고요

마을버스들이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시간 아직은 동이 트지 않았다. 오늘은 산책을 포기하고 동네 목욕탕으로….역시 아무도 없다. 이른 새벽 시간이어서 그럴까? 꼭 그렇지도 않다. 이사 온 첫 여름 내내 목욕탕을 다녀서 안다. 그러다보니 이름만 대중탕이지 독탕이나 다름없었다. 좋았다. 수영도하고, 냉탕과 사우나를 번갈아가며 두어 시간을 놀다가 지루해지면 때밀이 아저씨와 바둑도 뒀다(열두 점을 잡아도, 한 점을 잡아도 모두 내가 이긴다. 그 대신 장기는 아저씨가 馬를 떼도 包를 떼도 내가 진다).

“아줌마… 손님도 없는데 여름엔 문 닫지… 기름이 아깝자나?”
“한사람도 손님이죠.“
“우와~~~”
“그리고 우리 동네에 목욕탕이 하나밖에 없어서 안 돼요.”
“크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시골에서 갖 전학 온 나는 일요일이면 쌍문동에 있는 큰 삼촌댁엘 자주 갔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밥을 안 해먹어서 좋았고, 장아찌를 안먹어서 좋았고,뜨근한 국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작은 숙모를 따라 시장 구경하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 어느 날은 삼촌을 따라 동네 목욕탕을 갔는데 그때 도회지의 목욕탕을 처음 구경했다(물론 우리동네는 목욕탕 자체가 없다. 아니 목욕 자체가 없다!). 많은 것이 신기했다. 옷을 모두가 벗는다는 것, 옷을 벗는 곳과 신발을 벗는 것과 몸을 씻는 것이 모두 다르다는 것, 목욕탕 안에 이발소가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끌었던 것은 단연 한증막이었다. 목욕탕 안에 편입된 그곳의 알미늄 문이 열릴 때 마다 하얀 김이 한 무더기씩 밀려왔는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궁금했지만 들어가 보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일단 우리 또래의 조무래기들은 그곳에 없었고 모두가 어른들만 들어 앉아 있기도 했지만 문이 열릴 때 마다 탈출하듯 튀어 나오는 어른들의 행동에서 두려움(경이로움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붉게 충혈된 눈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와서는 미친 듯이 찬물을 끼얹는 모습도 그랬지만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직후 또 다시 그곳으로 돌진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증막’이라니. 입구에 걸린 붉은 색 글씨를 보며 할아버지에게 배운 한자어를 숱하게 대입했지만 한증탕으로부터 튕겨 나오는 어른들의 다급한 행동과 간혹보이는 어른들의 비장한 표정을 보면서 어른이 되서야 알게 된 ‘한증탕汗蒸湯’의 한자어를 그곳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하나같이 오래도록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탕의 밖으로 나온 후 비누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같았다. 그때 나의 생각은 욕조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비누칠을 할 것이 아니라 아예 몸에 비누칠을 하고 욕조에 들어간다면 그 모두가 한꺼번에 해결될 거라는 것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그랬다.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 인가?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속 시원하게 실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소 실천하기로 맘을 먹고 온몸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다리께쯤에 비누를 칠 할때면 머리에 묻은 거품이 사라졌고, 허리에 비누칠을 할 즈음이면 다리에서 만든 거품이 없어지는 바람에 거품을 내는 동작을 더욱 빨리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마음속에서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하얀 거품으로 뒤덮인 몸을 만들기란 쉽지가 않았다. 지금처럼 샴퓨가 있다면야 그걸 대야에 풀어 쓸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목욕탕의 비누는 어디를 막론하고 분홍색의 ‘이쁜이’ 비누뿐이었다. 꾀를 낸 나는 여기저기 흩어진 비누들을 바가지에 모아 미리준비한 양말을 이용하여 동그리미를 그려가며 맹렬이 휘젖다가 갑자기 회전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미친 듯이 원을 그리자 드디어 하얀 거품이 바가지를 넘칠 정도로 만들었는데 사라지는 거품을 경험 나는 마음이 조급해진 나머지 거품모두를 일거에 뒤집어 쓴 후 목조의 중앙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풍덩!”
예서 그 뒷일을 말하지는 않으련다. 삼촌에게 거의 반 강제적으로 끌려 나오면서 “촌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돼서 생긴 일”이라는 모욕적 해명을 뒤따랐다는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