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그가 귀국했을 때 “오너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일감이 생겨 시작한다면 그게 독립인가?” 며 주저하는 그를 떠밀었다. 그리곤 명륜동을 한국의 피렌체로 만들자며 루치아노 베네통 형제들이 골목길의 작은 상점에서 편물점으로 화사를 시작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어떤 이는 뜨개질을, 또 어떤 이는 일감 맡는 일을, 또 다른 어떤 이는 살림을 맡았던 그의 형제들처럼 나 역시 집수리 기술을 살려 창고를 수리하여 작업장을 만들고, 팔꿈치에 땀이 차지않도록 작업대에 감물을 들이고, 서재를 줄여 피팅룸을 만들고, 책장에서 책을 빼내 원단을 전시하고, 앞집 뽀글이 아줌마에게 부탁하여 싼값에 직원의 숙소를 임대하고, 옷 만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동영상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자막넣기’ ‘트리밍하기’ ‘음악넣기’등의 편집기술을 익혔다.

정작 문제는 그것들을 소용케 할 일감이 없다는 것. 흔히 입봉이라고 하는 첫 일감을 부모의 옷으로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 나도 이번 기회에 양복 한 벌을 맞출까도 했지만 그러지 않은 건 가슴 저린 공백의 시간을 올곧게 겪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작업대 위에 놓인 빈 골무로 보는 것은 괴로웠다. “어느 사무라이는 오래도록 칼을 갈다 보니 결국 자루만 남았다더라.”는 친구의 익살이 사실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옷 한 벌 만들어주세요. 아니……기왕이면 두벌이 좋겠군요. 맘 같아서 춘하추동으로 하면 좋지만…..”이라며 첫 번째 일감을 맡긴 사람은 옆집 소은네였다.

 

마에스토소 MAESOSO

무엇보다 먼저 한일은 마에스토소란 이름과 로고(이 역시 아들의 부탁은 없었다.)를 만드는 것이었다. ‘존엄’ ‘품격’의 뜻으로 음악에선 ‘장엄하게 연주하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비록 적은 직원과 소박한 일감으로 시작하지만 좋은 테일러가 될 것을 믿는다. 테일러는 영국의 드몬폰트 대학에서 건축을, 런던의 코벤트리대학과 이탈리아 폴리모다 대학에서 패션 테크놀리지를 공부한 후 피렌체의 장인 로리스 베스트루찌에게 실무를 배웠다. 난 그의 옷을 찍는 사진사다.

변화

“아빠 그렇게 말하면 안돼. 피렌체에서 로리스말곤 내 편이 없었다. 다들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독립을 꿈꾸는 동양인을 좋아할 이탈리안은 없어. 십 년을 죽어라 일하다 독립해도 영국까지 전화를 걸어 원단공급을 하면 거래를 끊겠다고 말하고, 거래할지도 모를 단추, 안감, 안주머니, 어깨뽕을 만드는 하청업체까지 미리 전화해서 위협을 하는 사람들이야. 배신자란 누명을 씌워서. 그곳에서의 독립은 영화 <대부>에서처럼 복수할 상대에게 생선을 보내는 것과 같아. 그런데 로리스만은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얼른 배워서 독립하라고 했어. 아니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물려주려고 은퇴를 미뤘어. 재봉틀로 만든 기성복은 쓰레기보다 못하다면서. 물론 언제나 잘해준 건 아니지만 로리스에게 심한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같이 일하던 일본애는 피렌체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미쉘이라는 폴랜드인은 지하실에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릴만큼 욕을 먹었어.”
“지하실?”
“응. 다림질하는 곳인데…. 그곳은 오직 로리스만 출입해. 투자자도, 멜라닌 사장도 못 들어와. 절대로. 어느 날은 날 내려오라고 하고선 사탕을 주더라고.” “사탕?” “응. 사탕. 난 다림질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사탕을 천천히 핥아먹었어. 그런데 다 먹을 즈음이면 하나를 더 줫어. 그렇게 자켓 하나가 완성될 즈음이되자 “넌 아직도 여기 있냐?” 며 버럭 신경질을 부렸지. 윗층까지 들릴만큼 큰소리로. 그것이 로리스가 날 가르쳐주는 방법이었다. 저 신발이 바로 그가 만든 첫 양복과 그의 친구가 만든 구두랑 바꿔 신었던 거래.”
“겨우 다림질 하나 갖고…” “아빠 그렇게 말하면 안되. 이건…이건 말이지…이건 옷에 숨을 불어넣는 숭고한 일야. 단순히 주름을 펴는 것이 아냐. 그가 다림질한 옷은 바람처럼 가볍고 돚처럼 풍성해서 그걸 입으면 체중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어. 도대체 옷이 몸에 닿지를 않거든.”

아들의 눈이 바람처럼….돚처럼 변했다.

클라이언트

두 번째 일감을 준 사람은 나의 클라이언트다. 집수리를 맡기러 왔다가 옷을 맡긴 것이다. 물론 옷을 맞추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모직 코트를 입으면 옷 태가 나는 체격이올시다.”라고 대여섯 번 말했을 뿐. 헌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와 산맥 같은 콧잔등은 당장 모델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었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가볍게, 별 뜻 없이,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 건데 선뜻 옷을 맞춰 입고 싶다고 말했다. 즉흥적인 결정이 아닌가 싶어 내 체면 때문이라면 그러지 말라 만류했다. 혹여 옷을 맞추면 한결 정성 들여 집을 수리할 것이라는 생각이라면 더 그래선 안 된다고 했음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피렌체 정통의 옷을 입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난들 어쩌겠나. 그런데….그가 돌아간 날 저녁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럼 그렇지. 세상일이 이렇게 쉽게 될 순 없는 법. 필경 그의 아내로부터 쿠사리를 먹었거나 신중치 못했던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일 것이리라. 좋아라했던 아들을 생각하니 아쉽기는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관대한 태도로 임하리라 .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제가 옷을 맞춰 입는 건 곤란하겠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요. 껄껄껄.”
“어머니를 두고 그럴 순 없어서요.” “그간 고생이 많으셨거든요. 그래서……….제옷 대신 엄마 옷을 맞춰드리려구요.” “굿 아이디어 .” “그런데 이번엔 엄마가 그럴 수가 없다십니다. 며느리를 두고 어떻게 당신만 옷을 맞추냐며.” “굿 아이디어.” “암튼 이번엔 옷을 못 맞추겠습니다.” “그러시죠. 껄껄걸.” “대신…….두벌을 맞추려는데요. 엄마와 집사람의. 안될까요?” “되다마다요…”

이 이미지는 대체 속성이 비어있습니다. 그 파일 이름은 TH8A4373-3-1024x683.jpg입니다

 

옷 짓기

소매를 제외하고 안감과 겉감이 하나인 옷을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우라가 없는 옷인데 집으로 말하면 인테리어가 따로 없는 거다. 통나무집처럼. 이 옷이 만들어진 계기는 테일러의 호기심과 클라이언트의 탐미주의자적 성향 때문이다. 뒤집어 입어도 될만큼 안과 밖의 품질이 같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재봉질 없이. 그때까지 테일러는 이런 옷을 만들어본 적 없었다. 스승 로리스가 자신이 입는 옷을 그 방식으로 만드는 모습을 잠시 봤을 뿐.
“그땐 로리스가 말해줘도 이해를 못 했어.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만드는 원리도. 내 인생에서 이런 옷을 맡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지.”

집에서도 몰딩, 걸레받이, 내장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속을 감추려 의도가 있는 것처럼 안감도 마찬가지다. 겉감을 보호하고 착용감을 좋게하므로서 겉감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원단이 실크라면 상황을 달라지는데 그걸 크라이언트는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럴 땐 옷 만드는 테일러가 부럽다. 집은 춥게 살고픈 홑집조차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어서다.

 

배신

테일러는 내가 쓰는 공간 한켠을 사용했다. 손으로 만드는 옷이라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원단, 마네킹, 옷걸이, 카다록, 패턴이 늘어나면서 내 공간은 점점 줄었다. 얼마 전엔 구두쟁이가 합세하더니 “신발도 놓으면 좋겠다”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되려면 겨우 남은 내 책장도 치워지고, 모자와 가방도 어디론가 사라져야 했기에 대답없이 듣기만 했는데…..삼청동에 새로운 매장을 내겠다며 봐둔 건물이 있다고 했다. 가게를 차린지 반년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가게가 번창한 것이다. 한번 보고싶다 말하니 이미 계약을 했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럴 거면 나에게 왜 묻는가?”라고 반문했겠으나 어느새 현장을 실측하고 배관을 조사하며 여기는 핏팅룸, 저기는 리셉션, 거기는 매장…..하며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한 달 안에 설계와 공사까지 마무리한 후 열쇠를 넘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게 말이냐 방구냐?”라고해야 옳겠으나 머릿속으론 이미 김씨에게 철거를 맡기고, 이씨에게 수도를 맡기고, 박씨에게 목공을 맡기며 요넘어 최씨네 건재상에서 벽돌과 모래를 배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는 페친의 말이 떠올랐다.

“호구 잡힌거예요.”

 

 

수리

양복점 수리를 시작한 지 어~언 달포. 이사하기로 한 날을 보름 앞두고 있으나 갈 길이 멀다. 암만 아비라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 마음을 전했다.
“수리가 좀 늦는구나. 미안하다.”
“아냐 아냐. 괜찮아. 내가 아빠에게 미안하지.”
“흠……그렇게 마음을 먹어주니 고맙구나.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내가 설마 현충일을 넘기겠냐?”
“………“

때는 5월초였다.

 

민원

수리하는 양복점의 이웃 중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람이 산다. 여럿으로부터 들은 바 있는 “웬만하면 상대하지 마세요.”라는 귀띔을 들었음에도 누구일까 궁금하던 차였는데 오늘 아침 그녀의 필적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출입문에 붙어있었다. 글씨의 획을 보니 한자를 쓰는 사람일 텐데 삐침을 끝이 정갈한 걸 보면 어지간히 섬세한 사람이겠구나 싶어 궁금함이 더했지만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실례 좀 하겠습니다. 도움말씀을 드리려고요.”
그녀였다. 정확히는 할머니. 수리 중인 내부가 궁금하다는 듯 말을 건네면서도 눈빛은 연신 내부로 향했다.
“제가 사는 집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사랑방, 침실, 기도방이 있는데 홋벽이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간밤에는 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설쳤어요. 먼젓번에 살던 사람은 좋은 이웃이었어요. 그들도 첨앤 팬을 틀었는데 우리집에 와서 그 소리를 한번 듣더니 싹 다 뜯어내지 머얘요. 참 좋은 이웃이었거든요. 그리고 지붕에 설치한 그 머냐…막 돌아가는 거…”
“실외기요.”
“맞다. 실외기. 그걸틀으면 비행기 소리가 들려요, 그래서 시청에 말을 했더니 참 빠르기 도하지. 곰방 오더니 글쎄 그걸 뜯어내서 건물 앞에다 갖다 놓지 머얘요. 혹시 이번에도 지붕에 실외기를 설치하면 저번처럼 시청에 말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어요. 오해 마셔요. 돈 들여 설치해놓고 다시 뜯어내는 불상사가 일어나서 되겠느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맞다. 냉장고가 요긴가 있었을 거야 아마. 식당에서 쓰는 대형냉장고. 아니 글쎄 그것도 소리 난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아 글쎄 그 말을 어찌 들었는지 저기 안쪽으로 옮겨주더라고요. 참 좋은 이웃이었거든요. 혹시 오해는 마세요. 그냥 도움 말씀드리는 거니.”
“고맙습니다. 맨발로 걸어 다니라고 하지 않아서.”
아멘

 

독촉

“아빠. 부담 주려는 건 아닌데….”
“수리가 언제 끝나냐 그거지?”
“아니 그건 아니고….”
“……”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대충해”
“……”
“삼천 가지고 뭘 하겠어. 벽 세우면 끝이겠다. 그지?”
“…….”
“근데…..여긴 좀 이렇게 하면 안 될까?”
“…….”
“아냐 아냐. 아빠 맘대로 해. 어떻하든”
“…….”
“늦어지면 공사판 한쪽에서 일하면 되지 머. 그지?”
“그래 그거야.”

 

 

류목수 1

“사장님 클났어요. 골치아퍼부러요.”
“왜 또요.”
“아 글쎄 제 동생 놈이 사당동에서 큰 장어집을 했는데 코로나가 왔자나요. 아, 근데도 그 집만 장사가 잘뒤야. 그러더니 곤지암에다 가게를 또 하나낸다며 나더러 그걸 해달라니 얼마나 골치아퍼요 글쎄. 사장님도 아다시피 번저뻔 여동생 가게도 인테리를 내가 했자나요. 명동의 중국대사관옆에 백오십억짜리 빌딩사서 거기다 체인점 냈다고 말씀드렸자나요 왜. 기억모뎌요?”
“하죠. 목수님이 공부시킨 여동생요. 근데 공부를 하도 못해서 복장학원에 보냈는데 거기서 지금 매제랑 눈이 맞아 스물한 살에 애를 낳어서 큰 조카가 마흔넷이고, 딸을 연짝으로 셋을 낳다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전에 휴가나와서 오만원 용돈 줬다는 그 집이잖나요.”
“사장님 참 똑디기 기억하시네요. 맞아요 그 동상. 제가 그때 바빠서 딴 사람에게 인테리를 하라고 했는데 오빠가 안해주면 이사안 간다고 버티니 아 어쩍게 안해요 그래. 그래서 할 수없이 했는데 아 이번엔 또 남동생놈이 그러니 골치아프네 참. 허허허. 기분좋으니 담배한대 피우고 일해야겄네 이거. 왜 이리 기분이 좋은거지. 흐흐흐”
봄비 소리가 비닐 지붕을 두들길 즈음 유목수는 셋째 동생 자랑을 시작했다. 그의 형제는 열둘이다.

 

 

류목수 2

“엊 저녁엔 나더러 일해달란 사람이 집 앞까정 찾아왔더라고. 일해달라고. 아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당장은 곤란하다고 좋게 말했지. 맘 같아선 그만두고 싶어도 사장 아덜 양복점이라는데 어쩌케 그러냐고. 아 그런데도 한사코 해달라는거여. 서운하지 않게 하겠다며. 아 그러면서 소꼬리곰탕을 사주더라니까. 만칠천 원짜리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요 지금?”
“아뇨. 그냥 혼자하는 소리여요.”

 

 

김목수

“오늘은 기분 좋게 일하면 좋겠다. 일이란 게 서둘러서 되는 게 아니 거든. 하던 대로 해야지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가 있나 어디. 살아보니까 성질부려봤자 소용없더라고. 그때만 잠깐 해주는 척하면 되거든. 뭐든 좋게 좋게 해야지. 분위기 좋은 게 일도 잘되더라고. 솔직히 일을 사장이 하나? 우리가 하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요 지금?”
“아뇨. 그냥 혼자 하는 소리여요.”

 

 

정반장

“명식아 배고파?”
“…….”
“명식아 배안고파?”
“……”
“명식아 배고프냐구.” “……” “야 임마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해.”
“……” “참 이상한 놈이네. 왜 말을 안할까?” “그럼 고프지 안 고프냐 새꺄?“

70년 지기.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엔 사치가 없다. 쿠즈유….우즈 유…메이 아이….이런거 모른다. 잡어, 끊어, 가자, 이리와, 좋아? 땡겨 그거면 다 된다. 전화도 그렇다. 여느 사람 같으면 용건을 다 말하고도 전화를 끊기까지 얼마나 긴가. “네 그럼 끊겠습니다. 네네네. 들어가세요. 네네 그럼. 아휴~먼첨 들어가세요. 네네네네, 아직도 안들어가셨어요?” 그들은 이런거 없다. “명식아 낼 나와 뚝!”

어디 말만 그런가. 오랫동안 일하던 딱부리반장이 중풍에 걸려 조적공으로선 사실상 재기불능이다. 그렇다면 “걔 이제 어떡한다지? 얼른 낫아야 할텐데.”라고 해야하겠으나……………”그 새낀 얼른 죽어야 해. 내가 죽으랬어. “얌마 너 죽어! 괜히 절반쯤만 낫아가지고 절뚝거리며 오래 살면 아들만 힘드니까 얼른 죽어.”
누가 들으면 저들이 과연 어릴 적부터 한동네 살던 친군가 싶다. 적어도 겉으론. 그런데도 시간만 나면 쌀이며 생필품을 오토바이에 실어다 대문 앞에 놓고 온다. 북아현동에서 딱부리가 사는 오산까지를 50cc 오토바이로 가면 두시간도 더 걸린다. 그런데도 이렇단 말 한마디 없 다.

 

 

 

 

VIP

그날 아들은 조금 들떠있었다. 하긴… 한꺼번에 다섯 벌의 양복을 주문하겠다는 이를 기다리는 중이니. 들리는 말론 옷을 보관하는 집만 두 채랬고, 그것만 정리하고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하루에 한 벌만 입어도 평생 입지 못할 분량의 맞춤옷이 이미 있다고도 했다. 우린 양복계의 전설을 기다리며 “이럴 줄 알았으면 별도의 주차장이 있는 집을 임대할 걸…”하는 후회를 자청하고 있을 때 차 한 대가 다가왔다. 길고 컸고 노~옵픈. 범퍼는 “난 디자인 같은 거 몰라!”라는 듯 수직으로 꺾였을 뿐. 차는 인도에 바퀴 한쪽을 걸쳐놓고도 가게 앞 마을버스 정거장을 꽉 채우자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오직 그 차만이 미동하지 않았다. 대신 운전석의 문을 연 한 사내만이 찻길로 내려 촘촘한 발걸음으로 다가와선 허리를 굽힌 채 반대편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이 지나서야 중년의 남자가 내렸다. 아니 한쪽 발을 인도에 내려놓곤 오른손을 이마에 댄 채 양복점을 쳐다봤다. 그리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양복을 맞추는 것임을 기억한 듯 우릴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
“옷이 맘에 듭니다. 제가 오늘 몇 벌의 옷을 맞추겠다고 했더라……”
“다섯…”
“아… 그랬을 겁니다 아마. 헌데 새로운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다섯 벌에 아흔다섯 벌을 더.”
“5+95?”
“네. 백 벌을 한 번에 계약을 하고 제가 원할 때마다 주문하고.”
백 벌이면 그의 옷만 만들어도 일 년에 열댓 벌이니… 전속 테일러나 다름없었다. 보장이란 불안을 떨쳐내는 것……그러나 자유가 그리울 땐 그것을 부여한 이로부터 승낙을 받아야 내 것이 되는 것. 그제야 허리 굽힌 운전사 모습이 떠올랐다.

테일러는 손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두번 쩨 수리

“이거로(다) 해.”
석 달 전… 아들은 충분치 않은 비용임을 알았던지 마음속에 있던 ‘다’를 눈으로만 말했었다. 그렇게 수리를 시작했고 준비된 돈을 모두 썼을 땐 유리창이 없는 창틀이었고 전깃불 몇 개가 들어오지 않아도 사후서비스를 부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양복 한 벌을 팔면 유리창을 끼우고, 바지를 팔면 중정으로 나가는 문의 손잡이를 다는 식으로 완성해나갔다. 다행히 운영은 잘됐다. 테일러 학교를 만든다고 학생을 모집했고 가르칠 공간도 따로 만드는가 하면 옷의 종류도 아이들 옷에서 어른 샤츠까지 넓어졌고 양복의 윗주머니의 코너도 더 넓고 둥글게, 코트의 카라도 예전 유보트의 수병들이 입던 그것처럼 과감해져 가며 마치 늦게 끼워진 유리창처럼 무언가를 보탰 나갔다.

이 이미지는 대체 속성이 비어있습니다. 그 파일 이름은 양복점본문_11.jpg입니다
  • Project Type Shop
  • Project Year 2021
  • Location Samcheong-dong, Seoul
  • Area 42.98 s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