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교회 설계소묘
김 재 관
이 교회는 제주도 서귀포 부근의 강정마을에 있으며,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처소이다. 마을은 북쪽의 한라산을 배경으로 중산간 도로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하며, 동네의 중심부가 교회의 장소이다. 부지는 입구가 좁은 장방형으로 바다를 향해 약간의 경사를 일루는 나지대로서, 이 땅을 상징해 왓던 굴무기나무가 도로와 만나는 입구에 있다.
건물의 배치는 대지를 횡단하는 도시계획예정도로를 경계로하여 주차장을 수용하고 요구된 규모의 시설을 나열하면서 결정된다. 도로에 의해 동강난 남쪽의 잔여공지는 당분간 마당으로 사용될 것이며, 지금은 잔디가 자라나고 있다.
대부분 그렇듯 이고장의 1,000여 가호의 집들은 올래(흔히 집 앞의 “길”을 일컽는 제주방언) 에 의해 서로 연결,소통되고 있는데, 교회가 1,001번째쯤으로 편입되면서 올래의 범위는 다시 확장되게 된다. 환기와 빗물의 처리방식에서부터 건물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도입된 올래가 기존의 그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외부로부터 시작되어 건물을 통과하기도 하고 2,3층 과 지붕으로 연결되며 높낮이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형식과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환체계는 또다른 서로를 이으면서 구조와 결합하고 건물의 구성에 긴밀히 작용된다. 또한 문화의 동질성을 암시함으로써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폐쇄적 형태로 인한 일반적 예측을 반전시키는 요긴한 장치이기도 한다.
건축적인 올래의 시작은 콘크리트 장벽에 있는 제한된 개구부를 통과하면서 속성은 변화하게된다. 분기점은 필로티 형식의 데크와 외부광장을 둠으로써 커뮤니티의 장소로 이용되며 각각은 열주,십자가 종탑에 의해 예배의 공간으로 유도된다. 현관과 본당이 만나는 곳에서까지 벽체를 통해 물리적 변화를 시도하려는 수법은 반전을 통한 위계의 설정과 이로인한 종교적으로 고양된 마음을 기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두 가지 형식의 구조체계는 공간의 성질과 축조의 용이함을 반영하며 재료사용의 기준이되고 있기도 하는데. 이는 간결한 전체적 구성과 함께 내외부의 질감을 일치시킴으로써 합목적성과 종교적 순수성을 내포하고자 함이다.
천창을 통한 빋은 콘크리트 벽에 의해 보호되며, 소리는 다시 하늘로 향한다.
나적처럼 여겨지던 공사비는 나와 집주인들이 장식적 요소에 대한 유혹을 자제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으며 이곳에서의 콘크리트는 건축적 성립의 최소단위를 말한다.
어떤 이는 이 집을 마법의 성이라 부르고 혹은 정신병원, 감옥, 방카, 밤섬 같다고도 한다. 방주와 같다고 하지않은것은 천만다행이지만 나는 “오름”이라 부르고 싶다.”하늘오름”이라고….
콘코리트 이야기
주도 남단 서귀포의 한 시골마을에 조금은 과분하다 싶은 하나의 건물이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결코 평범하지 않은 교회 건물을 갖고 싶다는 약간의 교만섞인 마음이 이 건물이 서게된 동기가 되었다. 무론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특별한 신앙적 고백이 있으나 그 점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본 교회 성도들에게 대단한 자부심과 애착을 갖게 하였다. 물론 모든 성도들이 전적인 호감과 만족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으나 ,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교회건축을 시작할 때의 의욕과 우려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변혁이라 할 수 있다.
이 교회의 노출콘크리트 이야기는 나와 무회 건축 연구소의 김재관 소장과의 첫 만남에서 비롯된다. 건축설계를 위한 첫미팅을 위해 제주에 내려온 김소장을 중문관광단지에서 만나 교회로 오는 길에 공사가 중단된 어느 연립주택의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방치되어 있는 건물의 콘크리트 벽면을 가리키며 “콘크리트는 자연 그 자체이며, 가장 아름답고 솔직한 소재”라고 설명하는 그이 말에 조금 당황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눈에 비쳐진 것은 공사가 중단된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더미”밖에 어떤 아름다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식되지 않은 순수함에 대한 공감대는 있었으나 “아름답다.좋다”는 느낌은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선입견이 노출콘크리트공법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로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설계를 위한 첫미팅에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벽체를 노출콘크리트로 한다는 그의 설명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갑자기 공사장의 거친 콘크리트 벽면이 연상되었다. 이 공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거푸집을 코팅합판을 사용하여 시공하면 벽면이 매끄럽고 “대리석(?)”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그의 설명에 어느정도 수긍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후 건축 설명회 등을 거치면서 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의 수긍과 특별한 건물, 즉, 평범하지 않은 건물을 원하는 젊은층들의 바람이 맞물려지면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건물에 대한 내 자신의 개인적인 개념은 “아늑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대리석이나 타일, 페인트 등으로 치장되어진” 것이었고 콘크리트면은 당연히 가리워지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김 소장의 설득작업으로 공간개념이나 분위기에 대해서는 감이 오기 시작했으나 “아름다운” 성전을 위하는 교인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계속적으로 “황량함과 썰렁함”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설계자와 교회의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내부공간만큼은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한 주장도 있었으나, 설계자의 뚜렷한 주관과 밀어붙이기에 번번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거푸집이 떼어지던 날.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 버렸다. 구멍이 난 벽면, 자갈과 모랫발이 보이는 부분들,,,이 공법을 지속할 것인가하는 오랜 격론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이 건물을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 끝난 거예요? 페인트칠 안합니까?” 가끔씩 묻는 이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외부인들이지만…우리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미 노출콘크리트공법에 세뇌당해버렸다. 많은 이들이 콘크리트 예찬론자가 되었고 건축에 대한 심미안을 갖게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나의 안사람이다. 처음에는 가장 우려하고 반대하던 사람중에 하나였던 안사람이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다. “교회건축을 한번 더 할 기회가 있다면 이 공법으로 다시 하면 좋겠다”는… 모든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이미 너무 높아져 버렸다. 이제는 치장되어진 어떤 건물을 봐도 눈에 차지 않는다.
‘우리 건물’이라는 주관적인 생각 때문일까? 콘크리트면을 보노라면 바라볼수록 좋아지는 순수한 자연미에 끌리게 되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어떤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깨끗하고 순수한 얼굴과 같다고 할까…마지막까지 의구심을 갖게 했던 내부 벽면에 대한 우려도 어느 시절엔가 사라져 버렸다. 아무도 교회당 내부에 들어와 노출되어있는 콘크리트 벽면에 대해 “왜?”라고 묻는 이들이 없다. 그저 경이스러운 눈빛으로 “참 좋다!”를 연발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라도 이번 건축을 통해 얻게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였다. 설계로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미 한가족이 되어버린 설계자와 시공자들, 비록 갈등과 마찰과 여러 힘든 일들이 있었을 지라도 그것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였다. 건축은 어떤 기교나 가식이 아닌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운 과정이요, 관계인 것을..
글/최공칠, 강정교회목사
무채색의 건축
필자가 강정교회를 처음 대한 것은 6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서귀포시에서 주최하는 ‘칠십리건축대상’선정을 위한 작품후보로 심사의뢰를 받은 때이다. 처음에는 도면만의 대면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건물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주최측의 방침에 따라 후보에서 제외되어 심사까지는 가지 못하였다. 이때에 도면을 통하여 받은 첫인상은 제주건축가의 작품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건축가가 흔히 고민하기 마련인 지붕부분을 대담하게 처리하고 있고 제주에는 흔치않은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했기 대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상들이 제주에서 흔히 보는 건축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음이 명백하다.
설계자인 김재관 씨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그러나 사무소의 이름을 보고는 어떤 인물일까 하는 호기심이 인 것도 그 당시 인상중의 하나이다. ‘무회無懷’라 하니, 마음을 비우고 건축을 한다(?)라는 것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건물이 완성되면 답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비평을 쓰게 되면서 그 동기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강정교회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굳이 제주건축의 지역성과 연결시켜 논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설계자 김재관씨가 제주를 안지도, 또 이해하고 있는 정도도 2년이란 시간을 능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맥락을 고려하는 일은 건축가로서 기본적인 사항이 되겠으나 충분하지 않은 성찰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현재 지역성을 논하여 명쾌한 해답들 제시한 이는 없다. 따라서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정교회를 평하고자 한다. 서귀포시 강정동은 서귀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편입된 지역으로서 서귀포 시내와는 6,7㎞나 떨어져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마을의 중간쯤에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십자가를 올린 탑이다. 그렇다고 마을 전체에 군림하는 듯 한 그런 위세는 아니다. 그만큼 크지 않은 교회건물인 것이다.
건물은 부지 내에서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을 둔 진입부분과 아무런 시설을 두지 않아 더욱 넓게 느껴지는 잔디마당인 남쪽의 넓은 마당 사이에 위치한다. 진입부의 좌측에 원통기둥7개를 세워 방문자의 발길을 자연스레 입구까지 인도하고 있다. 기도를 위해 방문한 사람은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보이는 직선계단을 올려다보게 되는데, 그 시선을 받쳐주는 종탑이 인상적이다. 이 계단을 올라 좌측으로 돌아서면 ‘교제의 마당’으로 명명된 넓은 데크가 있고, 그곳에서 회중석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루바닥의 홀과 정면에 양쪽으로 출입문이 있는 벽면이 나오고, 그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둥근 스크린이 서있다. 이 스크린을 돌아 들어가서 제단과 회중석 내부의 전부가 보이게 된다.
지금 필자는 교회의 중심공간인 회중석까지의 진입경로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강정교회의 진입은 회중석까지의 과정이 의도적으로 장황하게 처리되어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구 고딕교회의 경우도 내부나 외부의 공간처리가 장황하지는 않다. 현재의 교회건축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강정교회의 진입방식은 어쩌면 한국의 전통적인 진입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진입동선 자체를 길게 하는 것이나, 몇 차례를 돌아서 가게 하는 것이나, 돌아들게 하는 곳에는 시선이나 동선의 끝을 맺어주는 결절점으로서의 장치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상층의 슬래브 밑을 통과하게 하는 것 등이 우리의 정서에 익숙한 그것이다. 이러한 읟들은 오히려 우리의 전총사찰에서 흔히 보는 것이다. 무회를 생각하는 건축가가 교회를 설계하면서 우리의 전통건축을 의식한 것일까. 아무튼 한국 건축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의외의 장소에서 새삼 우리의 건축을 생각하게 되어 반갑기까지 한 것이 솔직한 심사이다.
강정교회의 도면과 실제 돌아본 건물의 주변을 비교해보면, 외관상으로는 폐쇄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사면 어디서나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의도는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출입개구부의 배치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끊임없는 동선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상하 간의 연결이 외부의 직선계단, 십자가탑의 계단, 건물 내부의 계단 등의 세 군데의 계단에서 단절됨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수평적, 수직적인 동선체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외부 진입동선이나 내외부의 구분을 없앤 동선체계, 단절 없는 수직동선 등, 장황하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동선체계와는 대조적으로 내부공간 특히 에배실 최중석 내부의 종결은 간결하기 그지없다. 제단의 원형벽면이 그 간결함을 어느 정도 무마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사각형의 평면공간 그것뿐이다. 이렇다 할 장식도 없다. 단지, 정사각형 평면부분의 매끈한 노출콘크리트 벽체와 달리 제단 원형벽면은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을 연상케 하는 몰탈뿜칠의 거친 질감으로 마감되었으며, 정사각형 평면을 틀어주는 성가대석이 원형벽면으로 제단에서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단지, 회중석 내부로의 자연광의 도입이 너무 많아 액센트가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음이 아쉽다. 자연광의 효과적인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종교적인 신비감이나 위계성과 의도할 수 있는 점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매스의 구성도 명쾌하다. 평면적으로 직사각형과 반원형의 상호관입에 의하여 구성되는데, 전체적인 매스의 구성은 기울어진 직육면체 매스를 반원형의 매스가 받쳐주고 있는 형상이다. 기울어진 직육면체에 의하여 회중석 내부의 방향성과 두 개 층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것은 넉넉지 않은 공사비 때문에 비롯된 아이디어라는 것이 설계자의 설명이다. 가능한 대로 공간을 줄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단 부분의 층고를 줄여야 했으며. 그래서 지붕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고, 기울어진 지붕과 직각을 이루는 멱체를 기울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진 직육면체의 매스가 형성되었고, 기울임 때문에 생기는 시각적 불안감을 직립한 반원형의 입체를 관입시킴으로써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매스의 구성이 명쾌함을 느끼면서 건축설계시에 각각의 요소나 어휘들에 개연성을 부연하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한 만큼 어려운 일임을 상기하게 한다.
강정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색채의 사용을 극히 절제하여 결과적으로 요란하지 않은 무채색의 건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채색은 십자가와 철제난간 등 몇 군데의 철제부분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노출콘크리트의 색채. 몰탈뿜칠 부분에는 안과 밖으로 회색도장으로 마감하고 있으며, 회중석 뒷면의 목재패널도 회색에 가까운 톤을 사용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었던 회중석 입구부분도 은분으로 강조하였을 뿐 채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무채색의 사용으로 인하여 강정교회는 그 자리에서 오래 있었던 물체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마치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것과 같이 자신을 과시하려 하지 않는 겸허자와 같이 말이다.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에는 고집스런 원칙이 계속되고 있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게 하고,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으려고 한 점이다. 안과 밖을 연결시키고 구분을 없애 막힘없이 순화시키려 노력하고, 한 벽체의 질감표현을 내벽과 외벽을 동일하게 처리하여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음을 의도하고-예를 들면, 원형제단부분의 분위기를 손상시키고 있을 정도로 이 원칙에 철저하고자 하였다.- 또 세곳에 계단을 두어 수직동선을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게 하였으며,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매스의 구성까지 명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원칙의 생성과정이나 의미에 대해서 필자로서 알 수는 없겠으나. 설계자 김재관 씨가 제주행 비행기를 70여회나 타는 열정을 보일 만큼 이 작품의 완성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기 때문에 더욱 이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건축과정에서 수많은 건축주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수많은 시공기술자들과 함께 실험하였던 것이리라. 그래서 강정교회에는 설계자의 원칙과 건축주, 시공기술자들의 충돌과 타협이 보이며, 그런 과정에서 건축에 묻어난 체취와 자국들이 보이는 것이다.
건축은 어떠한 용도에서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건축에서 인간을 보아야 한다. 한 건축의 곳곳에서 인간의 정신과 체취가 스며있고, 인위적인 제스처와 자국들을 들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을 비평하는 일도 건축에서 인간을 찾아내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자체도 자연의 일부 인 것처럼 가장 인위적이라 할 수 있는 건축도 자연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마치 자연의 일부 인 양 제자리를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양상호, 98′ 건축과 환경
작품기고, 건축과 환경, No. 9808, 1998
작품기고, 제민일보,제주의 건축물(23), 2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