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회, 나무 날 낮 밥해요. (번역: 무회선생, 목요일에 점심 먹읍시다.)”
그날 난 약속이 있었다. 게다가 운전도 못 할 뿐더러 전철을 타면 그 갑갑함을 견디지 못해 빈 자리가 있어도 앉지않고 차 안에 붙은 광고 속의 글자를 낱낱이 세고, 셋 혹은 다섯 글짜씩으로 묶어서 다시 세다가, 목적한 역에 도착할 때까지 첫 칸과 마지막 칸사이를 왕복하길 거듭하다 더 지루하면 꼬챙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장님 놀이를 하는 사람인데도 명륜동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혜화역에서 전철로 갈아타선 합정역에 내려 이미 길게 늘어선 버스 대기줄의 끄트머리에 서서 동교동 로타리와 한강다리를 횡단하는 댓바람을 고스란히 맞을 즈음 당도하는 2200번 광역버스를 타고 파주의 출판단지까지 가는 이유는 그 멀고 지루한 길 임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때면 무언가 가득 채워지는 푸짐한 기분 때문이다.

그곳엔 날개가 있다.
천진한 붉은 비니 모자를 머리에 얹고 남사스런 주황색 + 촌스런 남색이 섞인 점프슈트를 입은 그는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특급열차에서 스스로 내린 사람이다. 기타표를 잃어서도 아니고, 차비가 떨어져서도 아니고, 누가 내리라고 밀쳐서도 아니고, 나처럼 기차를 잘못 갈아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경통 때문도 아니다. 그는 특급열차에서도 우등칸으로 비유되는 유명 사립대학교의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있다가 돌연 기차를 이탈했는데 그 이유는 특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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