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기고, ‘일일건축설계사무실’, 패널건축, 2010

An Article, ‘The Street Expo for Architectural Design of House’, Magazine PANEL Architecture, 2010

일일 건축설계사무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일일건축설계사무실’을 열었다. 이 행사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서울의 밤이라는 행사의 일환으로 건축가와 대중이 동네에서 만나는 것이다. 북촌마을이 있는 재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이날의 행사에서 우리팀(목수 김삼중, 시아플랜 건축사사무소 윤지운, 홍익대학교 대학원 이상진, 삼육대학교5학년 김대현) 박민철 소장팀이 참석하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주제를 정했는데 박민철 소장은 ‘雜東山理’라는 간판으로 학생진로상담,신축,민원등 건축에 관한 전반을 상담하였고 나는 ‘집 고치기’라는 REMODELING을 맡았다.

‘일일건축설계사무소’는 건축가와 일반인들이 길 위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길은 공공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며 現實, 現象, 現場을 의미합니다. 건축가들은 이곳에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묻고 문제에 대해 상의할 것입니다. 또한 집이 어떻게 구상되고, 어떻게 지어지며,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집을 그릴 때 사용하는 도구와 도판, 건물모형과 함께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내가 정한 주제는 ‘집 고치기’입니다. 흔히 RE-MODELING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집 중에서도 단독주택, 한옥등 주거건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택이야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집의 유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주거환경과 물리적 상태가 심각한 지경입니다. 특히 1980년대에 지어진 보급형 주택들은 구조와 설비의 노후화, 생애주기의 한계, 단열, 소음, 일조권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그 이유는 날림도 있지만 낡을수록 재건축에 유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낡아야 했고 방치해야 했고 멀쩡하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파트의 효용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택에 대한 또 다른 ‘방임Banlieues’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아파트외에는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 고치기RE-MODELING’는 이 현상에 대한 대안입니다. 리플랫중에서

이날 내가 받은 손님을 모두 세 명이었다. 그야말로 8월의 한복판. 너무도 더운 날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오후 두시. 결단코 바람한 점 없던 그날 우리사무실의 환경은 참 열악했다. 옆이 튀어진 홋겹의 텐트는 더위를 막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에어컨? 당연히 없다. 선풍기? 다섯 사람당 한 대꼴. 음료수? 밍밍한 아리수 열 박스. 그날의 우리 삶의 수준은 이 정도였다.

첫번째 받은 손님

첫 개시는 젊은 부부였다. 남자는 살집 좋았고 여자는 빼빼했다.

“일찍 오셨군요.”

“아유~ 두시간전에 왔던 걸요. 신문보고 왔습니다. 좋은 행사네요. 돈도 안들고 헤헤. 근데 이런 것도 물어봐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건축에 관한 것이라면..”

“약수동에 집을 한 채 지으려고 합니다. 근데 설계,감리,시공을 분리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한사람에 다 맡기는게 좋은지해서요. “

“어떤 방법이 좋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바로 그걸 몰라서 온 겁니다.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더라구요. 어떤 사람은 한사람이 다 맡아서 하는 것이 좋다고 그러고 또 어떤 사람을 그렇게 하면 서로 짜고한다고 하더라구요.”

“짜요? 누가 그러던가요.?”

“저희 아버님이 아는 설계사가요. 근데 분리하면 감리와 시공자가 서로 싸운다면서요? 그러다 결국 시공자가 도망가고요..”

“도망? 누가 그러던가요?.?”

“저희 아버님이 아는 건설회사 사장님이요. 이럴경우 어떻게 하는것이 좋습니까?”

“그러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황희정승처럼 둘다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버님과 직접 지으라고 말해야 하나. 그냥 나에게 다 맡기라고 할까? 휴~ 곤란하다. 곤란해.

두 번째 받은 손님

마흔 중반쯤되는 두 분의 아주머니였다.

“집을 리모데링할려구요.”

와우! 드디어 제대로 된 손님이 오신 듯 했다. 어디선가 나의 명성을 듣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근데요……공사는 이미 시작했구요”

“머시라? 근데 왜 날…”

“공사가 중단되었거든요.. 민원 때문에요. 아니다..그게 아니다(손사레를 치며). 정확히 말하면 민원이 아니고 재수없게 구청애들(상설 점검반)에게 걸렸(적발)어요. 증축신고를 안하고 공사를 했다고요.”

“쯧쯧 왜 그러셨어요.”

“목수 경력 30년이라며 자기가 책임질 테니 걱정말라고 고해서요.”

“어떻게 책임을 지던가요?”

“그냥 미안하게됬다고 하죠 머. 사람이 좋은 분이거든요. 그리고 또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았는데 어떻게 책임을 물어요. 안그래요?”

이런 상담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법행위를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구청으로부터 발부된 강제이행금을 낸 후 불법부분을 철거하여 원상복귀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불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그에게 증축신고하는 절차를 알려줬다. 우우~ 날씨는 왜 이리 더운건지.

세 번째 받은 손님

이번에 어린 손님이었다. 밤송이 같은 상고머리를 한 일곱 살짜리가 한손은 엄마손을, 다른 한손엔 쭈쭈바를 들고 왔다. 이 무더운 날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갈아타며 엄마아빠형아를 따라 부천에서 왔다는 것이다. 큰맘먹고 온 것이다. 그 손님(일곱살박이도 이렇게 불러야하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시된 건축모형이었다. 그것을꼼꼼히 들여다보던 손님께선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끄덕거리기했고 모형의 모서리에 본드가 잘 붙지 않았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아저씨 이 건물의 구조는 머예요? 그러니까 어떤 구조냐는 거지요. 그리고 진짜 지어진 거예요? 아님 그냥 모형일 뿐이예요? 네? 그리고 요기는 재료가 머지? 창이 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디자인이 좀 구린데. 머 아저씨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그래도 기분은 은근 나쁘구나. 혹시 너 건축가가 되려고 하니?”

“예에(빤히 꼬나보며) 전 도형을 좋아하거든요.”

“조형?”

“아니요. 도형요 도형. 건축가 아저씨가 도형도 모르세요?”

“아,,,아 아니,,,,알지 아저씨가 그걸 왜 모르겠어. 어험”

일곱 살배기가 도형을 말했다. 물론 그가 圖形이란 묵직한 말을 연상하며 한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쭈쭈바를 빨고 있는 그 입으로 ‘도형圖形‘좋아 건축가가 되기로 하다니. 대개는 ’테레비에 나오는 건축가가 멋있게 보여서요‘ 라고 할 텐데 말이다. 그의 아빠에게 물었다.

“얘는 언제부터 이랬어요?”

“작년부터인 것 같아요. 어디서 멀 잘못 봤는지 이래요. 말도 마세요. 묻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오늘 여기에 오는 것도 쟤가 하도 볶아서 왔어요. 오늘은 꼭 건축가 아저씨를 만나야한다면서요.”

르꼬르뷰제나 루이스 아이칸같은 천재 건축가가 대한민국에도 출현할까?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일곱 살에 ‘圖形’의 의미를 안다면 아홉실 때는? 스무살땐? 그리고 서른살 땐? 그렇다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땠는가? 내 나이 스무살 무렵에는 도형圖形은 커녕 ‘네가 건축가가 되면 손에 내손에 장을 지지겠다“라는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고 스물일곱인가 여덟에는 “당신 건축하지 마!”라는 저주를 사무실의 보스로부터 들은 사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미치자 대견함 대신 열등감이 밀려왔다.

“야 꼬마야. 말로만 하지 말고 여기다 직접 그려봐라. 니가 가장 자신있는 집을 한번 그려봐.”

“그러죠 머.”

두 번쯤 눈을 껌뻑거렸던가? 그리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꼭 저처럼 생긴 나무연필을 꼭 저처럼 움켜쥐고 꼭 저처럼 꾹꾹 눌러가며 썰매를 밀고 나가듯 그림을 그려나갔다.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수근거림이나 칭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운 기색 한번 없이 칭얼거림 한번도 없이 오로지 마음에 떠오르는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그림을 이어갔다. 그렇게 십분이 흐르고 이십분이 지났고 다시 삼십분이 흘렀다. 이번에 엄마가 나섰다.

“제가 잘 아는데요 이 그림 하루종일 그려도 안 끝나요.”

“하하하”

이건 모여 있던 어른들의 웃음소리다. 어찌나 귀엽든지. 건축가가 되어도 좋고 다른 새로운 길을 만나면 또 어떠랴. 지금처럼 무엇을 하고 싶다는 싱싱한 욕망을 마음속에서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난 그 손님에게 전시된 건축책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권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꼼꼼히 뒤져본 후 공간SPACE란 잡지를 골랐다.

“이거 가져도 되요?”

“그럼요. 꼬마손님.”

“고마와요 건축가 아저씨. 그럼 전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 그림에 사인을 할께요.”

“어….어 그래. 고맙다. 매너 또한 캪이로군. 미래의 건축가 아저씨.”

그리고 엄마의 손을 따라 어디론가 떠났다. 쭈쭈바를 빨며.

이 행사를 마치고 사람들로부터 여러 전화를 받았다.

“건축가들이 길로 나가다니….너무 참신하군요, 참신해…..이런거 계속하세요.”

“모르긴 몰라도 이거 비슷하게 따라하는 행사도 생기겠는걸요? 재미있습니다.”

“근데 왜 이런게 신문에 안나오죠? 알았으면 갔을 텐데요. 솔직히 별거 아닌 일로 설계사무실 가는 것이 좀 부담스럽거든요”

그리고 디지게 욕을 먹었다.

“당신 건축가란 말을 쓰는데 혹시 건축사면허증 없는 것 아닙니까? 수상한데이거?”

“설계사무실 용어 틀린 것 알죠? 그게 언제 적 말인데요. 왜 건축사사무소라는 말을 쓰지 않나요?”

“길바닥에 명예를 버린 대가는 얼마던가요? 솔직히 좀 부끄럽지 않나요?”

가끔은 “다음엔 저도 끼워주세요’라고 했지만 말이다.

욕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건축사들이었고 격려를 한 사람은 일반인이었다. 다행이다. 나에게 ‘야매’라는 혐의를 가지고 비난하던 건축사들은 경쟁자일 수는 있지만 고객이 될 확률은 거의 없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좋아하겠는가? 차라리 무료손님이나 째끄만 일곱살배기 더 낳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집에 잘 갔으려나? 매번 WHY NOT이라고 말하는 듯한 소년의 눈은 생각하니 마음이 싱싱해진다. 그러고 보면 그날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상담을 해줬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아닌가 싶다. 욕을 먹고도 이렇게 싱글벙글이니 말이다. 글/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