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 순 미 (건축과환경 기자)

70여 회의 제주행을 감내하며 심혈을 기울인 강정교회프로젝트는 제주와의 인연의 끈을 토평교회, 빈이네 집, 그리고 한창 설계중인 충신교회로 이어 주었다. 무회건축연구소를 개소하고 절반이 넘는 시간을 모두 제주라는 땅에서 작업을 한 셈이다. 이방인에 대한 낮가림이 유독 심한 제주인들을 마음 열게 하고, 큰 일을 외지사람에게 맡길 수 있도록 한 건 매 프로젝트마다 순탄치 않았을 건축주와의 지리한 싸움에서 설득하며 때로는 설득당하면서 믿음이라는 기본적인 도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평교회는 예전의 강정교회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다. 교회라는 기능 이전에 땅이 주는 이야기가 다름에서 설계가 시작된다.

강정교회는 작은 마을 어귀, 2차선 도로 주변의 작은 초가와 1층 양옥집들로 둘러싸여 있는 평평한 땅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의 여느 마을 풍경과 다름없는 이곳에 하나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이와 달리 토평교회는 제주와 서귀포를 이어주는 통과도로 옆에 휑하니 지리한 땅에 위치한다. 이곳은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건축가는 처음 이 땅을 보았을 때 교회가 주변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꼈고 바로 타원형의 긴 매스를 성곽처럼 대지를 감싸는 형태로 배치시켰다. 돌담을 따라 앉힌 장방형의 긴 매스와 타원형의 매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서서히 걸어 들어가면서 예배당 건물은 감추어지고, 사무실이 있는 타원형의 매스에 의해 보이지 않던 옥내공간은 진입부를 통과하는 순간 일시에 넓은 마당을 보여준다. 물이 있고 나무가 있고 높은 종탑이 있는 공간, 마치 토평교회는 하나의 작은 성과 같다.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방어의 기능을 갖고 있는 성각과 그 내부에 펼쳐지는 모습들을 닮은 교회다. 이동하면서 각 장소마다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시퀀스는 이 건물이 주는 폐쇄적인 느낌을 완화시켜주고 내부로 들어갈 때의 긴장감을 보듬어 준다. 주변의 산만함을 정돈시켜주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편안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각 장면들의 절정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단 뒤로 넓게 트인 유리를 통해 펼쳐지는 한라산의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4계절의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땅 제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큰 선물이다.

건축가 김재관씨는 분명 달변가며 궤변가며 포섭가다. 그 만큼 자신의 신념과 의지가 분명하다는 말로 각색될 수도 있고 당에 대한 욕심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다. 파주에 지어진 금촌교회를 설계하게 된 배경을 들어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연히 지나가다 산허리가 잘려나간 언저리에 교회 공사가 한창인 것을 보게된다. 도저히 교회가 그렇게 지어져서는 안된다고 느낀 건축가는 그 길로 현장으로 들어가 자신의 개념들을 토해냈다고 한다. 그리고는 건축주가 기존의 설계를 변경토록 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시작한 금촌교회는 상처난 산을 치유하듯 산새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으며 앉혀진다. 경사진 대지는 그 경사로를 따라 긴 진입부를 만들고 몇 번의 꺾임이 있는 계단을 따라가면 어느새 지하층에서 2층으로 이어져 있다. 각 실들은 외부로 그대로 드러나 매스들의 중첩이 이뤄지며 입면의 다양함을 배가시킨다. 옥상에서 산길로 난 좁은 통로는 새로운 산책로의 입구역할을 해낸다.

땅마다 주변형상이 다르고 물리적인 조건들이 다르다. 그래서 어느 땅도 덜 중요하고 의미없는 땅은 없다. 그러나 빈이네 집 프로젝트에 김재관씨는 솔직히 건축가로서의 욕심도 한번 부려보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스케일감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멀건하게 다가왔다는 땅, 그 땅에는 이미 건축주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고 그것을 안 김재관 시는 땅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강정교회로 우연히 만나게 된 사진작가를 통해 건축주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마침 지금의 부지에 평생의 삶을 담아낼 집 한 채를 구상하고 있었던 였다. 건축가와의 첫 만남에서 건축주는 설득(?)당하고 만다. 몇 개의 개념 스케치만으로 지금의 빈이네 집 짓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빈이네 집에 있던 이 땅은 두 개의 돌축대가 엇비슷하게 높이를 달리하며 앞, 뒤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계단이 놓여져 있었다. 건축가의 눈에는 멀리 보이는 한라산도 비닐하우스 사이로 보이는 수평선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이 빈 땅에 사연담긴 창고와 돌축대, 계단 그리고 돌담을 따라 심어져 있는 삼나무들만이 강하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무의 상태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땅이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대안이나 구상이 필요치 않았죠, 원래 있던 흔적들을 찾아 제자리에 배치하는 복원자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

그림과 같은 이 땅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그는 건축가로서가 아닌 역사가의 손길로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들을 하나하나 땅 위로 드러내 놓듯이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빈이네 집은 6개의 객실과 갤러리, 다실로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고 기존의 허름한 창고는 건축주의 보금자리와 식당으로 꾸며졌다. 돌축대에 직교하여 사뿐히 얹혀진 4개의 큐빅들은 돌축대와 나란히 놓인 7개의 열주 축과 약간의 비틀림을 유지하며 만난다. 그렇게 해서 동서로 자연스럽게 옥외공간이 만들어진다. 진입부에 보이는 마당은 온실과 조각같은 나무, 화초들의 움직임으로 동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고 화창한 날씨에는 멀리 수평선까지 보이는 다실에서의 옥외 풍경은 연못의 가느다란 파동이 전해지는 정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있어야 할 것들과 없어도 될 것들에 대한 조율이 아직까지 자신의 미숙함이라고 털어 놓는 건축가 김재관씨는 빈이네 집을 통해 그의 건축이 조금씩 무르익고 있음을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