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부천의 남쪽과 부평의 사이에 상동 신도시가 생겨났다. 이 도시를 관통하는 넓은 도로변에는 그 방향과 나란하게 근린생활용지들이 블록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집은 그 상가건물들 사이에 있다. 그러니까 이 집은 흔히 말하는 상가형 교회가 되겠다.
이 집의 내부공간을 구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교회 건물로 항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건물을 매각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경우에 대응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원을 사용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실의 유닛이라면 웬만한 기능이라도 대입이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퍼즐의 원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퍼즐의 한층은 다섯개의 토막으로 되있으며 위로도 다섯 등분이 되있는데 이 각각의 유니트는 사용 목적과 용도에 따라 통합과 분리가 가능한 개념을 지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도시와 만나는 1층 부분은 변형적인 체계를 취하는데 퍼즐의 궤도에 해당한다. 대규모 공간이어야 할 예배당은 2층 전체와 3층의 가운데 세 토막을 합치는 방법으로 볼륨을 확보하였고 4층과 5층은 반대로 가운데 부분을 비움으로서 새로운 유니트가 생성되거나 수평으로 이동해야할 때 대응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이어주는 인대의 역할도 겸한다. 그리고 나서 맨 마지막으로는 개별체의 약점인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박스로 외피를 형성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노출콘크리트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것은 보통 목수들에 의해 합판이나 목제로 가공되는 거푸집과 달리 기성제품의 형틀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는 용도는 구부러진 벽이나 높은 층고에 유리하게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단열재를 내부에 충진한 채 한꺼번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어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부터 건물 벽체는 내부와 외부가 동일한 재질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던 나였기에 여러 겹의 벽체가 한꺼번에 만들어져서 그것이 최종적인 마감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것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는 말이다.
제주충신교회
동네 한 가운데 교회가 있는 경우 제일 큰 문제는 스케일의 격차가 아닐까 한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두 가지의 제안했다. 교회에서 가장 큰 시설인 예배당을 지하에 묻고 지상부분에는 필로티로 만들어진 주차장을 두고 노출된 기둥 위에 유치원을 얹히는 방법이며 또 하나는 지하층에는 유치원과 교회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을 두고 지상의 낮은 부분에는 교회를 두는 것이다. 이 경우 유치원은 4층에 두는데 아래층인 예배당의 사이에 한층 규모의 외부공간을 마련한다는 방안이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지상에 노출된 볼륨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것과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얻는데 1년이 걸렸다.
동네에 교회를 짓는데 스케일은 왜 문제가 되는가? 생각건대 이것은 단순히 크기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교회가 나타내고자하는 태도로 환원하여 인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자면 스케일은 일종의 발언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크기의 격차가 심하거나 그 형태가 보편적이지 않은 유형으로 나타날 때 심리적인 거부감은 가중된다. 결국 나의 고민은 스케일 부분에서 형식과 이미지에 대한 문제로 이동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교회는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인식에 동의했다. 이 동의란 그간 교회건축이 즐겨 추구해왔던 양식과 형식을 이 건물에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며 종교적 상징이나 이념을 건물의 어느 부분에도 부여하지 않으려는 건축적 시도에 대한 동조가 포함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건물의 외형을 이루고 있는 입방체나 형태들은 나 개인의 건축적 기호가 반영된 것이거나 고도제한과 건폐율 따위가 가감 없이 적용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혹자는 이 집에 사용된 무채색에 대하여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주변건물들의 채도를 반영한 것이거나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도장을 별도로 하지 않은 단순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이 동네에서 이 집은 튄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냉동창고라고 부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친숙해지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으로 창고라는 별명 때문인지 이 집의 용도는 자주 바뀐다. 예배가 있는 날 이면 교회가 되고 동네잔치가 열리면 공회당이 된다. 때로는 영화관도 되며 예식장이 되기도 하며 예비군이나 민방위 교육장으로 사용되면 현관에는 커다란 재떨이가 준비된다고 집 주인은 말한다. 그때그때 변해 가는 집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집이 냉동창고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울산교회
이 땅에서 수용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요구들이 있었다. 예를들면 예배당,교육시설,식당,거주시설,화장실,주차장은 모두 충분히 넓어야했지만 전체 규모는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의 절반으로 제한하고 있었고 각 기능들을 분리하여 별개의 건물로 설계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교회의 기능들은 이전에 비해 점점 복합적이고 다양화하고 있다. 예배당중심 보다는 커뮤니티 시설로서의 교회의 의미가 강화되고 있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모색의 과정은 새로운 혼란을 수반한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건축적인 방법의 구사이전에 교회의 내부적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관여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나로부터 제안된 계획의 핵심은 분리보다는 집합의 개념으로 정리되었다. 높아지는 공간의 밀도를 완화시키기 위해 평면을 최대한 확장했다. 그리고 유사한 기능들은 최대한 모아서 공간을 절약했고 대신 코아를 중심으로한 공유공간을 오히려 넉넉하게 만들어서 각 기능들을 통합하고 또는 분리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민박집 설계소묘
서귀포시의 남쪽에 토평동이라는 감귤이 많이 나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도 조금더 한라산으로 향하는 중산간의 깊숙한 곳인데 쑥대나무가 지천이고 가는 길도 좁은 곳에 방을 친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 곳을 처음으로 들렸을 때 뜻밖에도 집을 지을 준비를 이미 끝마친 듯한 생각이 들었다.집만 없었을 뿐 이미 사실상의 먹매김을 포함하여 어지간한 것은 다 있었다. 부지를 횡단하고있는 석축이 그랬고 어느 방향을 암시하고있는 돌계단들이 그러했다. 집만이 유일하게 소거된 그 집터에서 건축가가 할 일이 있다면 튼튼한 기초를 배근하거나 필요한 손님방을 규모있게 꾸미는 일과 더불어 나침반을 든 지관이나 샤만이 되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는 이곳만이 갖는 시간의 속도들이 있는데 섬 하나 보이지 않는 앞 바다의 희멀건함이나 여름날 집터에서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의 나른함과 닮아있다. 돌계단의 좌향을 따라 걷다보면 한라산과 만나는 돌담의 언저리와 그 너머 슬며시 고개든 산소와를 만날쯤되면 그것은 대번에 느껴지게 된다. 뒷짐을 진 듯 축대를 돌아 비틀어진 세 번째의 계단을 지나면서 다가오는 삼나무 너머의 하늘과 그 흐름의 끝인 빈터는 차라리허무할 지경이다. 나는 그것을 이곳에 흐르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그 시간을 느끼는 유일한 통로는 세 개의 계단이며 놓여진 위치와 떨어진 정도에 의해 시간의 밀도는 조율되고 있다.
나의 할 일은 창고가 멀쩡한가를 조사하거나 아직은 쓸만한 기존의 공간적 장치들을 찾아 새로운 집 즉 다른 프로그램을 대입시키는 것보다는 그것들과 더불어 부지의 일대를 관류하고있는 시간의 흐름을 추상이 아닌 실제적 순환체계로 인식하는 것이었다.그렇게 됨으로서 이 작업의 속성은 증축이라거나 공간적 이입이 아닌 재생 혹은 시간적 의미의 대입으로 개념이 확장되었고 그것을 형성하는 주요 물체들을 존속시켜 시간의 흐름을 관장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되었다.
이 곳에서의 가용부지란 석축과 비닐하우스의 사이이며 다른 한편은 창고의 외곽과 계단의 거리를 의미한다. 그 대강의 길이는 35미터와 9미터의 폭을 갖는데 그것은 객실과 갤러리를 나열하고 그 사이를 띠워 입구를 만드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그 수평적 배치의 끝은 비닐하우스에 거의 맞닿고 있으며 객실하나를 온통 기둥삼아 얹혀있게 되는데 그 벽과 석축의 사이는 객실을 지지하는 벽들을 제외하곤 비어있다. 그 피로티 공간의 하나는 주인의 숙소와 식당으로 이르는 포치이며 하나는 객실에 장작불을 때는 아궁이이고 또 하나는 그냥 비어있는 채 석축의 시작점인 돌계단과 새로이 구축된 콘크리트의 계단을 교차되게 보여주고 있다.건물의 정면을 이루는 2층의 객실군은 석축와 직교를 이루고 있으며 석축의 위를 지나 갤러리의 외곽으로 흐르면서 지붕의 끝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긴 물체에 의해 연못이 있는 마당으로 유도되고 있다. 이것은 2.4미터의 규칙적인 배열로서 위치에 따라 객실, 테라스, 전시벽, 현관, 헛간등의 역할을 하고있지만 그것은 부속된 기능에 불과하며 이 장소를 규정하는 석축의 치환된 장치로서 국(局)의 의미에 해당한다…..
새힘교회 설계소묘
예전에는 동네사람들이 늘상 오르던 산이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내기 위해 산의 허리를 자르면서 그 끄트머리였던 이곳도 본래의 흔적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의치를 해 넣듯 콘크리트 건물로 사라진 산을 만들고 그 지붕은 산과 맞닿케하여 길을 만들고 그 안에서 교회를 만들기로 했다.
토압의 부담을 줄이고 산의 갸름한 형상을 연장하기 위하여 산의 등허리와 나란한 축으로 건물의 방향을 잡는다. 부지의 양쪽에 있는 도로에서 모두 접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에 연결하면서 가로서있는 건물의 하부는 관통되고 있다.
주차장은 도로와 접하는 가장 낮은 레벨에서 통제되었고 그로부터 시작된 보행자의 길은 경사로를 지나 마당이 있는 외부공간을 지나 관통된 곳에 만들어진 피로티 공간에 도달하면서 여러 갈래로 다시 연결된다. 이 피로티의 기능은 아주 다양한데 이곳에 면한 많은 실들에 신선한 바람과 햇빛을 공급하기도하고 벌려진 틈 사이로 보이는 연못을 느끼는 휴식의 장소로서도 이용된다. 피로티를 지나면 맞은편의 도로와 만나거나 2층으로 향하는 예배당가는 경사로와 연결되며 또 하나의 다른 길은 연못에 담겨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2층이나 지붕으로 향하는데 성가대와 목사가 이용하는 기능을 겸하고 있다. 3층은 예배당의 무대천정을 낮게하여 만들어진 옥외 집회장이 있고 그 중앙에 놓인 가파른 계단의 끝은 산으로 향하는 길과 다시 연결된다. 예배당의 지붕의 한복판에 해당하는 그 길의 60센티의 좁은길로 양옆은 그 아래로 빚을 보내는 톱라이트와 나란히 만난다. 그 길의 끝은 산이며 산으로부터 시작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의 양끝에는 두 개의 수직계단이 연결되어 내부와 다시 연결되어 피로티로 모인다. 이 피로티는 시작과 끝이 아닌 계속되는 순환의 의미인 것이다.
토평교회 설계소묘
충분하게 넓은 땅이어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사방은 밀감밭이고 그 경계는 돌담과 삼나무로 표시되는 부지는 큰길에 간신히 선을 대고 있다. 2층 짜리 어린이집 한 채가 모서리에 먼저 들어서 있었고 나머지는 그저 막막한 그곳에 교회가 요구한 집은 2층의 경량 판넬로 만든 가쇼가 있는 집이었다.
전용면적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외부공간에서 직접 진입하는 방법을 제안하며 외부공간 구성의 실마리를 만들었다. 쓸모있게 토지를 이용하기 위해서 주차장과 운동장은 어린이집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 마련했고 완충적 구실을 겸하게 했다. 두 건물이 맞닿는 곳의 공허부는 한라산이 있다. 교육관에 있는 기능 중 예배당과 근접해야할 기능과 분리될 기능을 구분하고 외부공간의 적당한 크기를 정한 후 6미터의 폭을 지닌 반원의 커브를 그어 그곳에 적당한 실들을 배치했다. 커브는 필요한 기능들을 근접하게 하거나 또는 분리하는 수단이되며 외부적 환경으로부터 안거리에 해당하는 중정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하다. 지붕의 경사도 중정을 향하여 빗물은 연못에 모이게된다. 커브의 외벽의 하부는 단단한 벽으로 구성되며 그 위의 연속된 고창은 커브의 처음과 끝은 이으며 입면을 만들고 서향빚과 내부에 넓은 벽면을 제공한다. 중정에 접한 창은 출입문을 겸하게 되는데 사람과 바람과 빚이 출입이 자유롭게 조절될 수 있게 한다.
연못은 예배당과의 완충적 수단으로 사용되며 수직의 종탑과 함께 그 한쪽에는 무화과나무가 연못속에 심겨지게 된다. 예배당의 바닥은 주변보다 낮고 북쪽으로 향해 경사가 지면서 예배시 눈높이는 연못의 물표면과 유사한 지점에 놓인다. 보통 강대라고 불리우는 예배단 정면의 무대는 그 바깥으로 연장될 수 있고 그 끝은 휘어진 돌담으로 다시 마무리된다. 시원한 계절이거나 큰 규모의 무대행위가 필요할 때 덧문을 열게되면 무대는 아주 넓어지고 정 중앙의 한라산은 멋진 배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