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기고, ‘무엇으로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도서출판 A&C 0306, 2005.03

An Article, ‘To Drawing’, A&C, Mar. 2005

무엇으로 어떤 것을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대게는 건축주와의 첫 대면에서를 건물의 윤곽이 그려지는데 이때 사용되는 소통수단이 바로 말과 그림이다. 알다시피 그 둘은 용처가 조금씩 다르다. 나의 경우 보통 말을 더 많이 하는데 간혹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도저도 안될 때가 있다.

이야기 하나

작년 이맘때던가 제주에 민박을 설계하였다. 건축주의 한사람은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었고 광고대행사의 간부였으며 한국 폭력조직의 계보를 훍고 있는 전직 사회부기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경제학을 취미처럼 공부하며 제주에 집을 지으려고 한다. 그와 함께 살게 될 또 한분의 건축주는 현직 건설회사의 간부다. 이만하면 건축주 상대하기가 좀 빡시다.

“이번 제가 준비한 계획안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소장님 프리젠테이션 좀 잘할 수 없겠어요? 그리고 사무실에 빔 프로젝트 없습니까? 맨날 스치로폴에다가……..”

그들은 여러 광고주와 건물주를 상대했던 프리젠테이션의 고수들이다. 수단을 바꾼다.

“존경하는 건축주님.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리려는 뷰는 피로티라는 부분으로서 오픈스페이스를 만들기 위해……”

“소장니~임! 한국말로 그냥해요. 그리고 이번에도 또 말로 때우려고 그러죠? 그게 멉니까?복사지에다 색연필로 끄적끄적…………그런 거 다 아니까 좀 잘해봐요. 그리고 건물배치가 너무 경직돼 있자나요. 부드럽게 할 수 없겠어요? 입구에 장미 터널도 좀 하시고…….”

“네! 좀더 분발 하겠습니다.”

또 한사람의 건축주 말씀하신다.

“수고하셨고요 저는 좀 관점을 달리해서 공사비와 공사 방법에 알고 싶은데 설계하신 것을 공정별로 공법별로 시간별도 계절별로 그리고 재료별로 구분해서 알고 싶습니다. 자 그럼…….”

“저기 머시냐 그게 그러니깐드루 에………………….”

나중에나마 이들이 나를 지지한 동기는 나의 말과 그림 때문이 아니라 낡은 옷소매의 터진 실밥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이야기 둘

교회를 그려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선생, 재주가 좋다고 들었소. 우리 것도 잘 한번 그려보시오. 며칠이면 조감도를 하나 떠올수 있겠어요? 일주일? 열흘? 우리가 좀 바쁘거던? 급해요. 웬만하면 김선생께 이 일을 맡겨볼 참인데………”

눈빛이 유난히 비릿한 사내였다.(그럴수록 난 입맛이 돈다.)

“아~네 일주일이라니요 사흘이면 족합니다. 신속함. 그것이 제 유일의 특기걸랑요.”

스케치를 하나 준비한다.

건축주 될지도 모르는 그이 한 말씀 하신다.

“이 보오. 김 선생. 참 딱하시네. 그림을 그려와야지. 으~응? 그림을……”

“이게 그림인데………이게 말하자면 드로잉이라는 거걸랑요. 요 안에 핵심이 다 들어있습니다. 조감도는 설계가 다 나온 다음에 나올수 있는…………”

“이봐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해온다고 그러던데 김 소장은 머가 그리 복잡합니까? 그러지 말고 씨뮤레이션을 해오세요. 색깔을 산뜻하게 입힌 다음에 액자에 넣어서 오세요. 기왕이면 큼직막하게 말이오. Are you o.k?”

몇 일후 난 그야말로 크고도 큰 액자를 하나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예상을 못할 만큼의 많은 그림을(색을 입힌 씨뮬레이션)들을 그에게 가져갔다.

“저기요. 씨뮬레이션 그거 가지고 왔는데…..”

포장을 열리자 건축주 될지도 모를 그의 눈가에 윤기가 흐른다.

“요번엔 좀 성의가 있구만………… 그래 진작에 좀 이렇게 해왔어야지.으~응?”

“예 신경 좀 썼읍죠.”

“근데 말이오 김선생.아니 김소장……님. 다른 사람들은 모형도 해오더라고. 아니아니 꼭 해오라는 듯은 아니고……”

이야기 셋

한 사람의 화가가 있었다.

인사동의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양화가였다. 이야기는 역시 나로부터 시작된다.“필치가 좋군요. 특(特)히 말이죠 전체적(全體的)인 화면(畵面)의 포치(布置)와 선(線)의 농담(濃淡)은 가(可)히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대가(大家)인…………….”

“오호라! 제 작품을 보실 줄 아는군요. 어떻게 그리 첫눈에……………….”

얼마 후 그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김 선생님? 저 말이죠 아파트 팔았어요. 선생님이 그랬자나요. 인간이 살아있는 도막에는 자연에서 삶을 경영해야한다고요. 그래서 확 팔았죠. 마누라는 아직 모르지만요. 헤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김 선생님 저요 땅 샀어요. 백제의 기운이 있는 곳으루다가.”

드디어 설계가 시작되고 스케치가 그려진다.

“어머나 선생님 선 좋다. 괜찮으시다면 이 스케치 우리 거실에 걸어 놓아야겠다. 음. 물푸레나무 액자가 좋겠어요.”

“헤에 멀 이런 걸 가지고요”

“선생님 아예 저랑 설계를 같이해요. 우리.”

“네…………………..에. 그………..러……….죠 머. 하지만 그게요……”

“고맙습니다. 김 선생님. 역시 후렛쉬해.”

얼마 후 다시 찾아온 건축주는 한 보따리(조금 과장했음)스케치를 놓고 갔다. 다락 평면도 대안1, 대안2 대안3, 각각의 스케치와 조감도들과 가구들과 임대의 경우와 분양의 경우에 따른 전등계획과 친환경 재료에 대한 정보, 철거업체, 도배지 싸게 살수 있는 가게 주소들, 알길 없는 홈페이지 주소들………..그리고 메모장 하나.

“선생님 잠깐 그려본 건데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 그리고요 여기 적어놓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고요 소감 좀 말씀해주세요. 저는 하도 여러 번 들어가 봐서 어디에 무어가 있는 줄 다 알걸랑요.”

“예……………….물론………..”

“고맙습니다. 역시 친절하셔. 내일 다시 봐요 우리”

난 오랜 시간을 들여 그 그림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내가 급해졌다.

“박 선생님. 늦은 밤이지만…….죄송합니다. 도면 파악이 잘 안돼서요. 지붕의 구조를 목재로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철재? 혹은 공구리?”

“아이 김 선생님 그런 걸 제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거기 다 써 있자나요. 드로잉에요.”

“아아 네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차….”

“철제가 좋지요. 공사 딜리바리도 그렇고 목재로 한다면 적어도 더글라스 포 정도는 되야 하는데 너무 비싸고….그리고 무엇보다 목수들이 속을 썩히자나요 그리고 콘크리트는 말이 예요………. 으…….음 이런 거까지 말을 해야 하나? 제가 아토피성 피부걸랑요. 선생님께서도 알랑가 모르겠는데 콘크리트에는 알칼리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거든요. 그게 특히 안 좋고요 그리고 말씀이 나온 김에 꼭대기층 갤러리에다가 화장실을 하나 놓으면 좋겠는데 그러자면 파이프 배관이 안 좋겠죠? 아아아아아아아아 아니다! 아니다! 그 아랫부분이 부엌이니까 배관으로 인한 천정고의 감소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고…….음…….그건 해결됐고 그 다음은 방수문젠데요……아참 시간 괜찮으세요? 지금이 새벽 두시니까 지금 잠자기는 어정쩡하고……….”

요새 일어났던 이야기들은 꾸며서 말해보았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생각난 김에 드로잉의 재료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땐 역시 굵은 4B연필을 애용했다. 그러다 설계 사무실에 취직을 해서 그렸던 것은 로트링이라는 제도용 펜이었다. 0.3미리짜리와 0.5미리자리를 섞어 쓰기를 좋아했는데 그 당시의 선(LINE) 긋기의 유행하나가 선을 그을 때 똑바로 금을 긋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조금씩 떨면서 그림을 그렸었는데(나도 잠깐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방정맞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후 그만두었다.) 그 경우 매우 효과적인 필기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놈의 원리가 얇은 대롱을 통해 잉크가 흘러나오는 방식이라서 선이 잠시 멈추거나 빠르거나에 따라 그 농도를 조절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특히 무른 종이를 사용할 경우가 더 심했다. 그 다음 선택한 도구는 홀더였는데 그 건 순전히 나의 보스의 덕택이었다. 그의 안주머니엔 늘 프른색의 스테틀러 제품의 홀더가 있었는데 뽀얀 목면의 남방에 꽂힌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뿐더러 더욱더 매력적인 것은 그 연필의 끝에서 나오는 그 선들의 신비함 때문이었다.(물론 그것이 연필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그 당시 나의 보스가 그리는 선은 참으로 아름다웠었다. 어떨 때는 두꺼운 트레싱 페퍼마저 깊은 고랑이 패이고 더러는 두꺼운 연필심마저 툭툭 분질러져 나갈 지경으로 힘차다가도 연필의 꼭지부분을 오목하게 모아 쥐고 동그란 원을 반복해서 긋는다거나 그림자 같은 터치를 할 때면 영판 다른 도구로 둔갑했다. 칼도 되고 창도되며 더러는 붓도 되는 그런 이치 말이다. 그 덕에 난 한 일년간을 넘게 동그란 그림을 맥없이 그리거나 애꿎은 연필심을 부러트리며 그림을 그린적도 있었다. 그렇게 한 십년을 썼나보다. 그러다보니 연필의 프라스틱과 쇳덩이 부분이 만나는 지점이 부러져서 버린 것만 여럿이고 연필이 남방 주머니에 없기라도 하면 하루가 불안할 지경까지 도착했다. 그러다 사용한 것이 프러스 팬이었다. 이 친구는 심이 무른 것이 특징인데 면도칼로 그 끝은 경사지게 처내면 굵기의 조절이 용이하고 꺽어짐과 휘어짐에 대한 기교가 그만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낡고 말라버린 프러스팬이었다. 이상하게도 새것으로 그려진 선들은 눈이 거슬렸기에 일부러 뚜껑을 열어 놓고 집에 가기도하며 사용했는데 이 방식의 매력은 빠르게 긋는 부분과 멈추었을 때의 효과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특히 덧칠할 때가 좋았는데 선의 강도가 옅어서 설혹 잘못 그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실수가 잘 들어 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편했었다. 사실 금방 산 사인펜이나 프러스팬으로 스케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배짱인가?

그러다가 마흔 쯤 넘어가면서 도구에 대한 까탈스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어지간하면 큰 구분 없이 쓴다. 몽당연필도 쓰고 매직도 쓰고 모나미 볼펜도 괜찮다. 좀 폼나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그려지는 대상에 주목하다보니까 그런가보다. 그럼에도 드라이 마카는 안 쓴다. 이 친구는 참 맘에 안 든다. 이건 무슨 필기구가 아니라 다리미나 미장이의 흙손과도 같아서 어떤 존재를 표현한다기보다 전체를 발라(표피화)버리고 만다는 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더구나 손아귀에 잉크가 묻기라고 하면 그 유성의 끈적임은 정말 재수가 없다.

요즘 들어 즐겨하는 도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샤프팬슬이다. 한때는 그 균질의 굵기가 맘에 안 들었지만 그 균질의 한편에는 일종의 지성(知性) 같은 것이 있는듯하여 좋아졌다. 큰 붓을 사용해야할 경우가 꼭 있겠지만 어쩐지 모르게 그것들은 무엇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려니와 하세월이 흘러도 그 경지로는 도무지 이르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든다는 것이다. 가는 선은 참으로 잔인하고도 징그럽다. 그것들로 넓은 공간을 채우려고 들기라도 하면 막막하고 한심해지기도 하지만 선 하나가 가르는 그 세밀한 갈래에 생각이 닿기라도 하면 꼭 그렇지 만도 아니 것 같다. 막걸리도 좋지만 고운 명주에 거른 청주는 또 얼마나 명료한가? 커다란 대빗자락처럼 주~욱 주!~욱 긋는 맛도 좋지만 가늘고 날렵한 창칼로 나무결을 파고들 듯 샤프펜슬을 부러뜨리지 않고 조심조심 긋다보면 인식의 끊을 놓치거나 내던지지 않는 다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고 선의 마무림이 힘이나 속도에 의해서라기보단 나의 의지로 중단하거나 또는 시작한다고 생각해보면 이 또한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샤프팬슬이 근사한 드로잉의 도구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그 유치함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은 일종의 뿌듯함마저 선사한다. 내가 요새 사용하는 샤프팬슬의 꼭지는 동글동글한게 만들어진 미키마우스 조각이 있는데 정말로 유치하다. 그런데도 난 그 노골적인 유치함에서 통쾌함을 느낀다. 노골적인 것이 점점 좋아진다.

200503 무회건축 글/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