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강정교회, 경희대학교 이은석 교수, 월간 목회와 신학 No.160, 2002.09
Critique, ‘About Kang-jung Presbyterian Church’, Lee-Eunseok, Ministry and Tehology, Durano No.160, Sep. 2002
무채색 노출콘크리트로 빚어진 교회
이 은 석 (경희대 교수)
“하나님이 처음에 만물을 창조할 때에는 모든 것이 선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닿으면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 라고 장 자크 루소가 말한 바 있다.우리네의 경험에 따르면, 새로운 건설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요의 정적을 깨치는 것이요, 순수하던 곳을 오염시키는 작업이며, 자연 고유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웬지 모르게 제주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워야 할 땅인듯 싶다. 그런데 사실 서귀포시를 방문해 보면 여느 한국의 소규모 도시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건설의 허망함으로 가득 차있다. 근대화의 흔적또는 관광지라는 사실은 우리들 아름다운 추억의 전경을 자주 앗아가기만 했지, 진정한 미학적 가치로서의 풍요와 새로움은 전혀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그릇된 도시 전경의 책임으로, 근대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근거 없고 유치한 인습과 풍토성의 교묘하고도 무분별한 반복에 있다. 제주의 돌담집, 이것은 물론 당대에는 섬지역의 삶을 적절하게 담아내었던 것이고, 빛으로 충만한 고딕의 수직적 상징성은 중세교회의 요구에 잘 부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수한 재료를 남발하여 덧댄 제주의 수많은 건축물들은 진정한 풍토적 분위기나 전통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그 박제된 껍질만을 부여잡고 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교회당들을 보면, 그 또한 수백년 전 쓰러져 간 고딕성당의 박제된 모습만들 흉내내고 있지 않는가, 오늘 작지만 당찬 제주 강정교회의 건축을 통하여, 비록 미미한 건축적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중대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윤리의 한 단편을 발견할 수 있다.
노출콘크리트의 순수함이 우선 아름답다.
제주 강정교회(김재관 소장/무회건축연구소)는 여러가지 수준있는 건축적 가치들을 지니고 잇지만, 그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에 대한 언급하나만으로도 한국 교회건축의 사치스럽고 졸렬한 풍경을 치료하는 쓴 양약이 딜 수 있다. 이 교회는 노출콘크리트라는 독특하고도 강렬한 재료로 첫인상 지워진다. 교회에서는 자칫 흉물스런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완성된 지금은 모두가 그 새로운 순수성의 가치에 즐거워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담임목사 최공칠 목사님의 증언은 이런 경우에 아주 유효하다.”처음으로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거푸집이 떼어지던 날,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려버렸다. 구멍이 난 벽면, 자갈과 모랫발이 보이는 부분들…, 이 공법을 지속할 것인가 하는 오랜 격론이 지나간 추에야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완공을 보게 되었다. 물론 외부인들의 경우 “다 끝난 거예요? 페인트칠 안합니까?”라면서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교인들은 대부분 이미 노출콘크리트 공법에 세뇌 당해버렸다. 많은 이들이 콘크리트 예찬론자가 되었고 건축에 대한 심미안을 갖게 되었다….나는 이제 치장되어진 어떤 건물을 봐도 눈에 차지 않는다. 콘크리트면을 보고 있노라면 바라볼수록 좋아지는 순수한 자연미에 끌리게 되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어떤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순수한 얼굴 같다고 할까.”
노출콘크리트 공법의 가장 우선적인 가치는 이같은 순수성의 효과에 있다. 한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에서도 수많은 현대 건축가들이 이 재료로 건축해 보고싶은 욕심-비록 내 외부의 치장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으나 깨끗한 콘크리트면을 얻기 위하여 아주 섬세한 시공을 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은 인건비와 비용이 든다-을 갖는 것은 불필요한 치장을 제거한 채 일필휘지로 그의 조형미를 드러낼 수 있는 이 재료만의 고유함을 좋아하기때문이다.19세기까지 공장과 댐 건설에서나 사용되던 산업재료용 거친 콘크리트에 새로운 역할을 부과한 것은 프랑스 현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라는 건축가에 의해서이다. 그는 절제와 내핍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도미니크회 수도원 건축에 이 거칠고 노골적인 재료를 전격 도입하여 위대한 걸작을 만든 바 있다. 그 이후 이 재료는 오늘날까지 동서양을 무론하고 여전히 파급되고 있다. 이 재료가 갖는 가치는 이처럼 기교와 가식을 과감히 단념한 진실과 순수함의 미학에 있다. 사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교회는 그 재료가 뿜어내는 상징만으로도 이미 절제와 겸허함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잿빛 노출콘크리트의 자연미
강정교회의 건축적 가치를 재료의 상징성만으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너무 단순한 방문객이다. 왜냐하면, 도열하여 선 은빛 기둥들의 의식적 효과, 태양 아래에서의 잿빛 벽면이 빛과 그림자와 더불어 빚어낸는 조형의 다양함, 거칠게 마감되어 매달린 무채색 원형 볼륨의 육중함, 그리고 외부의 순례적 경사로를 오르며 바라보게 되는 ,푸른 하늘 배경으로 서 있는 종류의 경건한 모습이 우리들의 옷깃을 여미게하기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건한 행로의 절정은 ㄱ자로 꺾인 입구 캐노피를 통과하여 교회당 내부로 진입하였을때이다. 영원한 신의 은총의 상징인 빛은, 거칠고 무거운 잿및 벽면에 떨어지면서 무대를 밝게 변화시키고 현란하기까지 한 장려함을 연출하는 것이다. 사치로 영광을 꾸미고 거대함으로 권위를 과시하며 편리함으로 능력을 드러내는 오늘의 세태속에서, 이처럼 교회에서 사용된 겸허하고 소박하며 거친 노출 콘크리트는 정말 아름답다.